항목 ID | GC08500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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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朱永秀 |
영어공식명칭 | Joo Yeongsu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75년경 - 주영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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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9년 1월 - 주영수 강기동의진 활동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주영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강기동의진 의병 |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가계]
주영수(朱永秀)는 경상북도 영해군(寧海郡) 북면(北面) 원해리(遠海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 재판 당시 35세였으므로 출생 시기는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활동 사항]
경상북도 영덕 지역 출신의 주영수는 1908년 강기동의진에 참여하였다. 강기동의진 참여에 앞서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한국군 강제 해산으로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고랑포(古浪浦)에서 고안헌병분견대 헌병보조원으로 복무하고 있던 경기도 장단 출신의 강기동은 1908년 1월 이은찬(李殷瓚)이 이끄는 의병 부대에 투신하였다. 그리고 3월 31일 이은찬이 체포된 후에는 직접 의병을 이끌고 경기도 양주(楊州)·포천(抱川) 등지에서 활동하였는데, 주영수가 강기동의진에 합류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09년 1월 주영수는 강기동의 지휘 하에 30여명의 의병과 함께 양주군(楊州郡) 북면(北面)에서 군수품을 징수하였다. 1910년 4월 2일에는 강기동 의병장의 명령에 따라 “군자금 헌납을 요청하고 만약 이를 거절할 경우 군율에 의하여 처단할 것”이라는 격문(檄文)을 미리 보내 둔 경기도 포천군(抱川郡) 외소면(外所面) 이곡리(利谷里) 이장(里長) 이병덕(李秉德)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후 주영수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0년 4월 30일 경성지방재판소 형사부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