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씨굴, 고씨 형제의 임진왜란 의병 항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006
한자 高氏窟, 高氏 兄弟- 壬辰倭亂 義兵 抗爭
이칭/별칭 영월 고씨굴,고씨동굴,피난굴,노리곡굴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 산262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방기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9년 - 고씨굴 천연기념물 지정

[정의]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에 있는 고씨굴과 임진왜란 중 고씨 형제의 의병 이야기.

[개설]

영월 고씨굴은 약 4억 8000만 년 전인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기(Ordovician)에 퇴적된 석회암이 분포한 지역에 위치한 석회동굴이다. 굴의 길이는 주굴(主窟) 약 950m, 지굴(支窟)은 약 2,438m, 총 연장 약 3,388m인데, 이 중 620m 구간만 공개되고 있다. 굴 내부에 4개의 호수, 3개의 폭포, 10개의 광장이 있으며, 종유석(鐘乳石)·석순(石筍)·석주(石柱)·커튼(curtain)·곡석(曲石)·동굴진주·피솔라이트(pisolite)·동굴방패·월유[moon milk]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분포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동굴수(洞窟水)의 공급이 멈춘 곳에 형성된 흑색의 동굴산호가 주목 받고 있다. 동굴에는 곤충강 9목 21과 27종, 거미강 4목 17과 26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동굴 생물은 진동굴성(眞洞窟性) 12종, 호동굴성(好洞窟性) 20종, 외래성 43종으로 나타난다. 동굴 내 온도는 15℃, 수온은 5.3℃ 안팎이다.

[임진왜란과 고씨굴]

1592년 4월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5월 2일 한성을 함락시키고 6월에는 강원도로 향하였다. 영월군 진별리에 살던 고종원(高宗遠)·고종길(高宗吉)·고종경(高宗慶) 형제는 경상우도초유사(慶尙右道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의 초유문(招諭文)과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격서(檄書)를 보고 군량미와 병기를 조달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봉기를 위하여 모인 수백여 명의 백성들은 고종원을 의병장으로 추대했다. 한편 강원도관찰사 유영길(柳永吉)은 의병장 고종경에게 관군 500명을 흥원진까지 통솔케 했다. 그런데 이동 중 탈영이 속출하여, 약속한 날짜에 흥원진에 도착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유영길은 고종경을 처벌하였다. 8월 16일 일본군은 영월군 주천을 침략하였고, 17일 진별리에 이르렀다. 고종원과 고종길 형제는 노리곡굴(魯里谷窟)로 피신하였다. 일본군은 피난민들을 협박하여 고종원·고종길 형제가 노리곡굴로 피신한 사실을 알아냈다. 18일 일본군은 노리곡굴 입구에 섶을 쌓고 불을 질렀다. 고종원·고종길 형제는 동굴 밖으로 나왔다가 일본군에게 사로잡혔고, 고종원의 아내 조씨 부인은 연못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이후 노리곡굴고씨 일가족이 피신하였다고 해서 고씨굴 또는 피난굴로 불리게 되었다.

[현황]

영월 10경 중 하나인 영월 고씨굴은 1969년 6월 4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74년 5월 관광동굴로 개발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다양한 생물과 동굴 생성물의 분포지로 지질학적·생물학적 가치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과 관련된 역사유적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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