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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1192
한자 吳光鮮
영어음역 O Gwangse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용인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도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기도 용인시
성별
생년 1896년연표보기
몰년 1967년연표보기
본관 미상
대표경력 육군 대령

[정의]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아버지는 한말의 의병장 오인수(吳寅秀)이다.

[활동사항]

이청천(李靑天)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제1대대 중대장으로 활약하는 한편, 신흥무관학교 교관을 역임하였다. 서로군정서 별동대장을 거쳐 경비대장으로서 활약하였으며, 청산리대첩 이후 독립군들이 노령으로 이동할 때 조직된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의 중대장을 맡아 러시아의 자유시(自由市)로 이동하여 이른바 ‘자유시참변’에서 일대 수난을 당하였다.

1930년 한국독립당이 결성되고 그 산하에 한국독립군이 편성되자 그는 의용군 중대장으로서 총사령장관 이청천(李靑天), 부사령장관 남대관(南大觀), 참모관 신숙(申肅) 등과 함께 무장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1933년 7월 수분하(綏芬河) 대전자(大甸子)에서 일본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여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1933년 오광선은 이청천 등과 중국 관내로 이동하여 낙양군관학교 내에 한국독립군을 위한 특별반을 설치하여 군 간부를 양성하였다.

이 같은 활동을 하다가 1940년 1월 베이징[北京]에서 일제에 피체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재차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광복 후에는 광복군 국내 지대 사령관을 지냈으며, 육군 대령으로 임관되었다가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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