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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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部里 |
영어음역 | Dongbu-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순임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예전 예안읍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동부리가 되었다. 자연마을인 골내는 고려시대 말에 내가 있었고, 만촌은 동부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새터(신기·통시모래)는 골내 남쪽에 1890년경 새로 조성된 마을이며, 세천나들은 마을 가운데로 작은 내가 흐르고, 송티는 송티재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이 붙었다. 월천은 조선중기의 학자 월천(月川) 조목(趙穆)이 태어난 곳으로, 월천의 아호와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월애 또는 달애, 다래라고도 부른다.
『선성지(宣城誌)』에서는 월천마을에 대하여 “마을은 현 동쪽 7리에 있다. 용두(龍頭)와 영지(靈芝) 두 산이 이어져 내려와 서로 나솟아 부용봉(芙蓉峯)이 되었으며, 그 아래에 마을이 있으니 바로 월천이다. 옛날에는 사는 사람이 없어서 초목이 무성하고 원숭이와 토끼들이 떼 지어 다녔다. 이 때문에 예부터 세속에서 마을 이름을 전하기를 ‘솔내(率乃)’라고 하였다.
천지간에 아끼고 비밀로 한 지역으로 주인 없이 던져진 지 이미 오래되었을 때 동지공(同知公) 권수익(權受益, 1452~1544)이 부라촌(현 부포리)에서 태어나 이곳의 빼어난 경치를 보고서 옮겨 살려고 하였다. 홍치 갑인년(1494)에 가시나무를 베어내고 터를 닦아서 시거하였는데 옛 이름인 솔내를 고쳐 월천이라고 하였다.
동지의 외손인 조목이 이 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월천으로 호를 삼았다. 선생은 또한 ‘대라(帶羅)’라고도 하였는데 부라(浮羅)와 짝하여 부른 이름이다. 마을 뒤쪽에 부용봉이 있고 앞으로는 낙천을 마주보고 있어서 참으로 예안의 특별한 땅이 되었다. 고 퇴계 선생께서 남과 만나서 말이 우리 고을 산수의 기이함에 미치면 반드시 월천을 으뜸으로 치고서 곳곳마다 시(詩)를 남기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대한제국 말 예안군 읍내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만촌동·관저동·교촌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안동군 예안면 동부리가 되었다. 1973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일부 지역이 수몰되고 나머지는 1974년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뒤쪽에는 낮은 산이 있고, 앞으로는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나가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현황]
동부리는 도산면의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부리와 의촌리·분천리와 이웃하고 있다. 2008년 12월 기준 면적은 약 7.03㎢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37세대에 70명(남자 37명, 여자 3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로는 새터·괴네·송티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동부1리와 월천으로 이루어진 동부2리가 있다. 예안면 부포나루터와 마주보고 있는 월천에는 1539년(중종 34) 조목이 건립하여 후진을 양성하고 수학하였던 월천서당이 있고, 조목의 셋째 동생인 조정(趙禎, 1551~1633)의 겸재(謙齋)가 있다.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산69번지에는 2002년 완공된 경상북도 산림과학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