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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321
한자 周溪里
영어음역 Jugye-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주계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선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4.12㎢
총인구(남, 여) 241명(남자 127명, 여자 114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116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주계리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 1526~1586)회곡(晦谷) 권춘란(權春蘭, 1539~1617)을 배향한 주계서원(周溪書院)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자연마을인 섯밭은 와룡산(臥龍山) 기슭의 섶나무를 쳐 내고 밭을 일구어 그 터에 마을을 조성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전(薪田)·섶밭밑이라고도 한다.

인두루는 원강이 서쪽에 있는 마을로 인두로촌(仁豆老村)·원주계(元舟溪)라고도 한다. 원주계의 발음이 변하여 인두루가 되었다고 한다. 마을에 주계서원이 있었으나 폐쇄되고 주춧돌만 남아 있다. 인두루 동쪽에는 감은산(感恩山)이 있다. 조선 영조 때 김상천(金翔天)이 꿩 두 마리를 얻어서 부모에게 바치고 그 은혜를 생각하여 산 이름을 감은이라 하였는데, 반구재(反求齋) 권성제(權聖躋)가 기문(記文)을 지어 찬양하였다고 한다.

구선대(九仙臺)는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가류리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마을 입구 길가에 있는 구선대에서 따 온 이름이다. 구선대는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병풍바위를 중심으로 양쪽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모여 있으며, 앞에는 맑은 계류가 흐르는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영가지(永嘉誌)』에는 ‘아홉 신선이 노닐던 곳’이라 기록되어 있다.

구선대 병풍바위를 지나 한 굽이 더 가면 길가에 마치 갓을 쓰고 있는 형상의 큰 기자바위가 있다. 전면은 거의 수직을 이루다가 중간에서 턱이 지면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 있는데, 돌을 던져서 이곳에 얹히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왼손으로 던지면 더 좋다고 하는데 바위 부근에는 아들을 바라는 사람들이 던져놓은 작은 돌이 수북이 쌓여 있다.

네멜(일명 네밀)은 인두루 북쪽 산 너머에 있는 마을로 와룡산 남쪽 언덕배기에 자리 잡았다고 하여 남애(南厓)로 부르던 것이 발음이 변하여 된 이름이다. 용두골[龍頭谷]은 주계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용이 지나다가 떨어져 죽은 용산(龍山) 아래 길게 자리 잡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와룡산이 용의 머리처럼 마을로 향했다 하여 용두골이 되었다고도 한다. 원강이(일명 운강(雲岡))는 용두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와룡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항상 구름 속에 잠겨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용두골·원강이·인두루·가야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주계리가 되고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와룡면 주계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남쪽에는 와룡산이 우뚝 솟아 있고, 북쪽에는 와야천이 동쪽으로 흐르다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구릉지에는 촌락이 흩어져 있다.

[현황]

와룡면 중앙에 있는 마을로, 안동 시내에서 12㎞, 와룡면 소재지에서 4㎞ 떨어져 있다. 2008년 12월 기준 면적은 4.12㎢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116세대에 241명(남자 127명, 여자 11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인두루·섯밭·구선대·네멜·용두골·원강이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으며, 주로 안동김씨와 김해김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인두루에 있던 주계서원은 1612년(광해군 4)에 창건되어 구봉령을 배향하고, 1621년(광해군 13)에 권춘란을 배향하였다. 1693년(숙종 19) 사액되고 이듬해 주계리로 이건하였으나 1869년(고종 6)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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