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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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石里烽燧址 |
영어음역 | Sinseongni Bongsuji |
영어의미역 | Sinseokri Beacon Sit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 207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조규복 |
성격 | 봉수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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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 후기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 207 |
소유자 | 안동시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있는 고려시대 봉수 터.
[변천]
신석리 봉수는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왔을 때 축조한 것이라 전한다. 1999년 발간된 『안동시사』에 신석리 봉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경상도지리지』(1425)에는 ‘남산봉수는 동쪽으로 신석산 봉수와 15리의 간격으로 연결되고, 신석산 봉수가 다시 15리 간격으로 약산봉수와 연계되어 있다.’ 『영가지』(1608)에는 ‘봉지산 봉수는 신석산·감곡산 봉수로부터 보고를 받아 개목산 봉수에 전한다.’ 『증보문헌비고』(1908)에는 ‘진보 신법산·약산·신석산·봉지산 봉수를 거쳐 직봉과 연결되어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치]
신석리 봉수지는 안동대학교 앞 포진교에서 남선면사무소 방면으로 약 1.5㎞ 떨어진 납뜰마을 어귀에서 다시 남쪽으로 1.5㎞ 거리의 신평못 왼쪽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신석산성(申石山城) 동쪽으로 해발고도 304m 지점의 정상부에 해당한다.
[현황]
주변으로 토성과 군데군데 토석혼용성(土石混用城)을 쌓은 흔적이 있다. 현재 봉수대에는 기와 조각과 막돌들이 장방형으로 쌓여 있고, 이곳에서 10m 정도 떨어진 지점에는 집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봉수대 전체의 크기는 24m×10m이며, 축대 너비는 120㎝이다. 지금은 이 터에 진천송씨(鎭川宋氏) 송원현(宋元鉉)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담은 길이 35㎝, 두께 23㎝, 너비 14㎝ 정도의 자연석을 엇갈려 쌓았으며, 8단으로 물려쌓기를 하였다. 담은 밑면 너비 80㎝, 윗면 너비 55㎝, 전체 너비 15m, 길이 28m 정도의 직사각형이다. 안동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신석리 봉수지에서 발견된 건륭갑신(乾隆甲申, 1764)에 구웠다는 명문(銘文)이 있는 기와를 살펴볼 때, 조선 후기까지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과거에는 이 일대에 기거할 수 있는 가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집터의 흔적이 봉수대에서 1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