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5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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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映湖樓 |
영어음역 | Yeonghoru |
영어의미역 | Yeonghoru Pavili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정하동 342-5[강남로 187-5]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정진영 |
성격 | 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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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고려시대 |
정면칸수 | 5칸 |
측면칸수 | 4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정하동 342-5[강남로 187-5]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정하동에 있는 고려시대 정자.
[개설]
영호루가 전국적인 명소로 알려지게 된 것은 공민왕(恭愍王, 1330~1374) 때의 일이다. 1361년(공민왕 10) 10월 홍건적이 침입하여 개경이 함락되자, 공민왕은 남쪽으로 몽진하여 경상북도 안동에 이르게 되었다. 공민왕은 자주 영호루에 나아가 군사 훈련을 참관하고 군령을 내렸으며, 배를 타고 유람하거나 물가에서 활을 쏘며 심회를 달랬다. 홍건적이 물러나고 개경으로 환도한 후에도 이곳을 잊지 못하여 1366년(공민왕 15) 겨울 친히 붓을 들어 ‘영호루(映湖樓)’ 석 자를 써서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권사복(權思復)을 불러들여 면전에서 주었다.
[위치]
경상북도 안동의 남쪽 낙동강 변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에는 영호루 앞쪽으로 남쪽에서 안동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통과하는 나무다리가 있었고, 뒤쪽으로는 안동 읍성과 안기역으로 가는 길이 나뉘어져 있었다. 위치상 시내와 가깝고 경치가 좋으며, 영호루 앞에 맑은 강물이 호수를 이루어 배를 띄우고 선유하기에 알맞아 고을 사람들과 안동을 찾는 나그네들의 놀이터로도 이름이 높았다 한다.
[변천]
영호루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고려시대 장군 김방경(金方慶)이 1274년(원종 15) 일본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영호루에서 시를 지은 것으로 보아 1274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367년 안동 판관 신자전(申子展)이 영호루의 규모가 작아 공민왕이 내린 현판을 걸기에 어울리지 않으므로 영호루의 위치를 더욱 물에 가깝게 하고 규모를 크게 확장하여 중수하였다. 1488년(성종 19) 김질(金耋)이 중수하고, 1547년(명종 2) 홍수로 유실되자 5년 후인 1552년(명종 7) 부사 안한준(安漢俊)이 복원하였다.
1605년(선조 38) 두 번째 유실이 있었고, 71년 후인 1676년(숙종 2) 부사 맹주서(孟冑瑞)가 복원하였다. 1775년(영조 51) 세 번째 유실이 있었고, 13년 후인 1788년(정조 12) 부사 신익빈(申益彬)이 복원하였다. 그러나 1792년(정조 16) 또다시 유실되어 4년 후인 1796년(정조 20) 부사 이집두(李集斗)가 복원하였다. 1820년(순조 20) 부사 김학순(金學淳)은 영호루를 중수하고, 자신이 쓴 ‘낙동상류 영남명루(洛東上流嶺南名樓)’라는 현판을 걸기도 하였다.
1934년(갑술년) 7월 안동시 내가 물에 잠기는 대홍수로 또 한 번의 유실이 있었고, 1970년에는 안동 지역민들이 모금한 성금과 국비, 시비를 모아 옛 영호루 자리에서 강 건너편인 현재 위치에 철근 콘크리트로 한식 누각을 새로 지었다.
현재 영호루에 걸려 있는 공민왕이 썼다는 현판은 홍수로 영호루가 유실될 때마다 그 운명을 함께하였다. 유실되었던 현판은 한두 해 또는 십여 년 뒤에 가까이는 안동시 풍산에서 멀리는 경상남도 김해에서 그때마다 수습되었다. 따라서 영호루의 복원은 현판의 횟수와 늘 함께 이루어졌으며, 현재의 현판은 1934년의 홍수 때 유실되었다가 그해 가을 경상북도 구미 부근의 강물에서 회수한 것이다.
그 밖에 시문이 쓰여 있는 게판들 또한 이곳저곳에서 찾아 안동군청에 보관해 왔던 것이라 한다.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에는 안동에 주둔하고 있던 명나라 군대가 현판을 파손한 것을 1602년(선조 35) 부사 황극중(黃克中)이 보수하고, 1603년 부사 홍이상(洪履祥)이 금칠을 다시 입혔다고 한다. 1992년 안동문화원에서 영호루 옛터에서 북쪽으로 약 20m 지점에 영호루 유허비를 세웠다.
[형태]
현재의 영호루는 철근 콘크리트로 된 한식 누각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북쪽 면에는 공민왕의 친필 현판을 걸고, 남쪽 면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인 ‘영호루’를 걸었다. 내부에는 갑술년 홍수 때 유실되었다가 회수한 현액들과 새로 복원한 현액들을 게판하였다. 현재 게판되어 있는 시판은 12점이고, 제영 1점과 현판 2점이 있다.
[현황]
안동의 라이온스클럽에서는 영호루에 게판된 시를 번역하여 관광객들이 시 감상을 보다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