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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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惟一齋宗宅 |
영어공식명칭 | Gwangsan Gim Clan's Old House |
영어음역 | Gwangsangimssi Yuiljae Gotaek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613[선돌길 113-1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6년 1월 20일 - 안동 유일재 종택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1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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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동 유일재 종택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
성격 | 고가 |
양식 | 5량가구 홑처마 |
건립시기/일시 | 1600년대 말 |
정면칸수 | 3칸(사당) |
측면칸수 | 1.5칸(사당)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613[선돌길 113-16] |
소유자 | 김병문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개설]
안동 유일재 종택은 광산김씨 유일재 공파의 종택으로, 김언기(金彦璣, 1520~1588)의 9세손이 구입하였다. 김언기의 자는 중온(仲溫), 호는 유일재((惟一齋)이다. 이황(李滉, 1501~1570)의 문인으로, 1567년(명종 22)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을 후진 양성에만 힘썼다. 여강서원(廬江書院, 현 호계서원) 창건을 주도하고 교육 활동에 힘써 당시 안동 지역의 문풍(文風)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였다.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뒷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변천]
김언기의 선대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서 거주하였으나 김언기가 가야(佳野)로 이거하였고, 1700년대 말 김언기의 9세손인 김도상(金道常)이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로 옮기면서 이 집을 구입하였다고 전한다. 건립 연대는 1600년대 말로 추정된다.
[형태]
안동 유일재 종택은 ‘ㅁ’자형의 정침(正寢)과 정침의 좌측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사당이 별도로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정침의 우측에는 초가 방앗간채를 두었다. 정침은 ‘ㅁ’자형의 정면 좌측과 우측 단이 각기 1칸씩 돌출되어 있다. 정면 가운데에 나 있는 중문간(中門間)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사랑채가 있고, 우측에는 행랑채가 자리 잡고 있다. 중문간은 현재 부엌으로 사용하고, 사랑채 뒤편의 좌익사(左翼舍)의 통래간이 중문간을 대신하고 있다.
사랑채의 좌측에는 사랑 대청을 세로로 놓았으며, 우측에는 사랑방을 가로로 길게 앉히고 그 앞에 툇마루를 들여놓았다. 행랑채는 옛 중문간 우측으로 외양간·모방·온돌방이 차례로 배열되어 있다. 안채는 6칸통의 안대청이 중심을 크게 차지하고 있으며, 그 좌측에는 툇마루를 둔 온돌방과 마루방이 있고, 우측에는 안방이 자리 잡고 있다. 마루방 앞으로는 온돌방과 현재 중문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통래간 그리고 헛방이 이어져 좌익사를 이루고 있고, 안방 앞으로는 부엌, 고방, 두지가 차례로 이어져 우익사(右翼舍)를 이루고 있다.
안대청의 배면 띠장널창과 사랑방 정면 띠살창의 창틀 중앙에 가는 기둥인 가운데설주가 세워져 있다. 이런 창호를 영쌍창이라 하는데, 18세기 이후에는 거의 자취를 감춘 고식에 속하는 창호 형식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전면에 반 칸 규모의 툇간이 갖추어져 있다. 건물의 구조 양식은 자연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5량가구의 홑처마집인데, 사랑채의 정면은 기둥 상부에 주두를 얹고 주간에 소로로 수장하여 그 격을 높였다.
[현황]
안동 유일재 종택은 1996년 1월 20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1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김병문이다.
[의의와 평가]
안동 유일재 종택은 배치 및 평면 구성 등에 있어서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