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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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鶴巖古宅 |
영어공식명칭 | Gim Junghyu’s House in Omidong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48[구수나무길 5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월 14일 - 안동 학암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17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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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동 학암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재지정 |
성격 | 고가 |
건립시기/일시 | 1800년경 |
정면칸수 | 3칸(새사랑채) |
측면칸수 | 1.5(새사랑채)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48[구수나무길 59] |
소유자 | 김윤 |
문화재 지정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개설]
안동 학암고택을 건립한 학암(鶴巖) 김중휴(金重休, 1797~1863)는 조선 중종 때 이조참판을 거쳐 삼도방백(三道方伯)을 지낸 청백리 김양진(金楊震, 1467~1535)의 12세손이다. 후일 김중휴가 제릉참봉(齊陵參奉)을 지내 참봉택이라 부르게 되었다.
[위치]
안동 학암고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48번지[구수나무길 59] 안동 풍산김씨 종택 바로 앞에 위치한다. 앞으로 검무산을 바라보고, 뒤로는 독지미 또는 구을산을 등지고 있다. 풍수지리상 소백산맥이 ‘새 을[乙]’자를 아홉 번째 지으며 맺히는 길지라고 한다.
[변천]
안동 학암고택은 1800년경 김중휴가 분가할 때 지은 집이다. 일설에 의하면 1820년(순조 20)에 세웠다고도 한다. 새 사랑채는 기둥과 보 등이 구재(舊材)이면서도 풍화 정도가 안채보다 덜한 것으로 보아 후대에 건축한 것으로 생각된다. 후에 제1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지냈던 김재봉(金在鳳, 1890~1944)이 태어나고 자랐던 곳이라고 한다.
[형태]
안동 학암고택은 ‘ㅁ’자형 집으로, 중문을 기준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나뉘어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약간 경사진 높은 터에 토담을 두르고 5칸 행랑채에 솟을대문을 내었다. 원래는 중문 밖에 사랑채, 행랑채, 초당이 있었으나 현재는 그 자리만 남아 있다.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침(正寢)이 남향으로 배치되었고, 그 우측에 곡간이 나란히 서 있다. 마당의 동편에는 새사랑채가 서향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외에도 초당 등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다.
사랑 부분은 안마당으로 통하는 중문간(中門間) 좌측의 툇마루 뒤에 1칸 반 크기의 사랑방을 배치하고 좌단에 1칸을 돌출시켜 사랑마루를 꾸몄는데 뒷벽 지게문 위에 벽감을 설치하여 처마 밑에 달아 놓았다. 중문간 우측에는 마구간과 부엌방이 1칸씩 놓여서 앞채를 이루었으며 2칸통 안방 부엌과 직각으로 접하였다.
안채는 안마당과 같은 폭의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건넌방을 배치하였고, 우측에 안방을 배치하였다. 대청 전면의 기둥은 두리기둥을 세웠고 1칸 넓이의 좁은 우물마루 상부는 3량가구로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마루대를 받치고 있다. 마루의 뒷벽에는 각 칸에 두 짝 열개널문을 내었는데 어간의 것은 문턱을 낮추어 뒤꼍 출입이 용이하게 하였다. 안채 우측에 나란히 선 4칸 ‘ㅡ’자 곡간은 판벽(板壁)을 치고 각 칸에 두 짝 널문을 달았으며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앞마당에 서향으로 서 있는 새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인데 북측 2칸은 툇마루 뒤에 2칸통 사랑방을 들이고 남단에 1칸 반 마루를 두었다. 행랑채는 어칸에 솟을대문을 내었고 좌측에는 방 2칸을, 우측에는 마구 1칸과 방 1칸을 설치하였다.
[현황]
안동 학암고택은 1984년 1월 1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7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소유자 및 관리자는 김윤이다. 현재는 빈집으로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안동 학암고택은 경상북도 안동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집으로 조선 후기 주택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특이한 사항은 대개 ‘ㅁ’자형 집은 후대에 사랑 부분을 확장하여 개조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 집은 사랑채를 별동으로 증축하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