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936 |
---|---|
한자 | 義城金氏鶴峯宗宅 |
영어음역 | Uiseonggimssi Hhakbongjongtaek |
영어의미역 | Hakbong Head Residence of Gim Clan of Uiseong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6[풍산태사로 2830-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5년 12월 1일 - 의성김씨학봉종택 경상북도 기념물 제112호 지정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의성김씨학봉종택 경상북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고가 |
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6[풍산태사로 2830-6] |
소유자 | 김종길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기념물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개설]
의성김씨학봉종택은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살았던 가옥이다. 김성일은 류성룡(柳成龍)과 더불어 퇴계 이황의 고제(高弟)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27세에 사마시, 1568년(선조 1)에 증광문과에 합격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577년(선조 10)에는 사은사를 따라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파견되었고, 1590년(선조 23)에는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경상우도병마절도사겸순찰사를 역임하여 왜적과의 전투를 독려하다가 진주성에서 병사하였다.
[위치]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야산을 등지고 비교적 평탄한 대지에 서남향으로 좌정하였다.
[변천]
의성김씨학봉종택은 원래 지금의 자리에 있었으나 지대가 낮아 자주 침수된다며 김성일의 8세손 김광찬(金光燦)이 1762년(영조 38) 이곳에서 100여m 떨어진 현재 소계서당(邵溪書堂)이 있는 자리에 옮겨 살았고, 의성김씨학봉종택이 있던 자리에는 소계서당을 지었다 한다. 그러다 1964년 종택을 다시 원래의 자리인 현 위치로 이건하였는데, 이때 종택의 안채만 옮기고 사랑채는 남겨두어 소계서당으로 쓰도록 하였고, 소계서당을 개조하여 종택의 사랑채로 꾸며 사용하게 되었다.
[형태]
근년에 지은 5칸 규모의 서북쪽으로 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왼쪽에 정침과 그 뒤쪽의 사당이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마당 건너편에는 근년에 지은 운장각(雲章閣)과 정자가 서북향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 정침은 ‘ㅁ’자에 양익이 달린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최근 왼쪽에 직각으로 ‘一’자 아래채를 달아내어 사(巳)자형으로 바뀌었다.
정침의 정면 오른쪽에는 사랑채가 돌출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2칸통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양측에 온돌방을 1칸씩 두고 앞면에 길게 툇마루를 둔 중당협실형의 소계서당이었던 건물을 개조하면서 왼쪽 2칸을 사랑방으로 꾸미고, 오른쪽의 2칸은 사랑 마루방으로 만들었다. 사랑방 왼쪽에는 2칸통의 작은 사랑방을 두었으며, 뒤로는 1칸 책방을 놓아 안채의 우익사에 연결하였다.
안채는 오른쪽 3칸을 대청으로 꾸미고, 왼쪽에는 안방 2칸을 두고 끝에 부엌을 놓았으며, 그 앞쪽의 좌익사는 식당 등으로 내부가 개조되었다. 사랑채나 안채의 상부 가구는 5량가이고, 제형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올렸다. 정침의 오른쪽 뒤편에는 사당 3칸을 배치하고 토석 담장을 둘러 별곽을 이루었다.
[현황]
1995년 12월 1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김종길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우여곡절이 많은 건물로 구조, 양식적인 특징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안동의 대표적인 양반 가옥의 전형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