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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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蒼巖亭 |
영어음역 | Changamjeong |
영어의미역 | Changamjeong Pavili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신성리 산12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정진영 |
성격 | 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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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겹처마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고려 후기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신성리 산12 |
소유자 | 풍산홍씨 대종회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신성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정자.
[개설]
창암정은 풍산홍씨 2대조인 홍애(洪崖) 홍간(洪侃, ?~1304)의 정자이다. 홍간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풍산홍씨의 시조 홍지경(洪之慶)의 아들이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평보(平甫)·운부(雲夫), 호는 홍애이다. 시문에 능하였다. 2000년 10월 창암정 아래 홍간의 시인 ‘창암정운(蒼巖亭韻)’을 새긴 시비를 세웠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가에서 고기 잡아 버들에 꿰고/ 밭두렁에 차조 거둬 소 등에 실었어라/ 돌아와서 스스로 내 삶에 만족하니/ 국화주 재촉하여 가을 경치 즐기려네(江畔釣魚穿細柳 隴頭收秫䭾嬴牛 歸來自詫生涯足 催釀黃花賞九秋).” 이 시로 미루어 보아 창암정은 홍간이 살아 있을 때에 벌써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서 다리를 건너 낙동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안동시 풍천면 기산리를 지나서 안동시 풍천면 신성리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안동시 풍천면 구호리 쪽으로 다시 가다 보면 좌측 절벽 위에 창암정이 남동향으로 앉아 있다. 절벽 한편에는 ‘풍산홍씨세장지지(豊山洪氏世藏之地)’란 바위글씨가 새겨져 있다.
[변천]
창암정은 홍간이 동래현령 재임 시에 시조 선형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창암정의 내력은 1994년 11월 풍산홍씨대종회 명의로 게판된 「창암정 중수기」에 비교적 소상하게 나와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홍애공이 정자를 지은 후 화재로 소실되어 한 칸의 모옥(茅屋)을 지어 여러 해를 내려왔다. 그 후 영조 25년(1749)에 세계(世契)가 중심이 되어 경향 각지 제종인(諸宗人)의 협조를 받아 1년 남짓 공사 끝에 복원하였다. 이듬해인 1750년 3월 정자 아래 명사(明沙)에 후손들이 운집하여 중건 잔치를 성대히 하였다. 1962년과 1981년 부분적인 보수가 있었고, 1994년 6월 4일 중수가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형태]
창암정의 기단에서 정자 마루까지의 높이는 건물 앞쪽이 90㎝ 정도 들려 있으나 뒤쪽은 거의 맞닿아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4면이 개방된 구조를 갖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이었다. 마루는 기둥과 기둥을 가로질러 장귀틀과 동귀틀을 결구하고 홈을 파 적당한 크기로 자른 널빤지를 끼워 맞춘 우물마루이다. 마루에는 계자 난간을 돌려 안전함과 멋스러움을 보여 주고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서까래가 밖으로 드러나 있으며 서까래 사이에는 백토칠이 되어 있다. 기둥과 마루의 재료인 나무에는 주사칠이 되어 있다. 창암정의 전면 어칸 처마에는 현판이 걸려 있다.
[현황]
2009년 현재 소유자는 풍산홍씨 대종회이고, 관리자는 홍혁주이다.
[의의와 평가]
창암정은 건물의 양식면에서는 뛰어나지 않으나 정자의 기능을 충족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정자 건축의 자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