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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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漢陽趙氏 |
영어의미역 | Hanyang J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집필자 | 김복영 |
세거지 |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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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 |
입향시기/연도 | 16세기 후반 |
성씨시조 | 조지수(趙之壽) |
입향시조 | 조적(趙績) |
[정의]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적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개설]
안동의 한양조씨는 1600년대 중엽 조적(趙績)이 영주에서 안동으로 옮긴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연원]
한양조씨가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고종 때 첨의중서사를 지낸 조지수(趙之壽)의 현손 조인벽(趙仁壁) 때부터이다. 조인벽의 아버지는 용성총관을 지내고 홍건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에 봉해진 조돈(趙暾)이며, 아우 조인옥(趙仁沃)과 함께 조선 개국에 많은 공을 세워 대장군이 되었으며 태조 이성계의 매부가 되었다. 조인벽의 아들 양절공(良節公) 조온(趙溫, 1347~1417)은 찬성사, 조위(趙渭)는 우의정을 지냈다. 한양조씨는 조선 개국과 함께 크게 번창하면서 한성으로 옮긴 조돈의 후손들이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한양을 본관으로 하면서 형성되었다.
[입향경위]
1518년 기묘사화 때 조온의 현손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가 죽자 조위의 증손인 현감 조종(趙琮)은 화를 피하여 영주로 이거하였다. 조종의 장자 조인완(趙仁琬)의 후손은 풍기 와단에, 차자 조예완(趙禮琬)의 후손은 임하면 오대리에 정착하고, 삼자 조지완(趙智琬)의 손자 조관(趙貫)은 병자호란 뒤 출세를 단념하고 옛 안동부 감천현(현 예천군 감천면)에 이거하였으며 후손 중 문과 6명, 진사 15명을 배출하여 일대에 두루 알려진 가문이 되었다. 또 사자 조신완(趙信琬)의 증손 조적은 안동 저전(현 서후면 저전리)에 정착하였으며, 오자 조형완(趙亨琬)의 아들 조원(趙源)은 영양으로 이거하여 후손이 일월과 주곡에서 크게 문호를 개창하였다.
[현황]
조적의 세 아들의 후손들이 현재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서후면 저전리을 중심으로 인근 마을에 세거하여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