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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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明佑 |
영어음역 | Gwon Myeongu |
이칭/별칭 | 자연(子淵),가재(可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부 |
성격 | 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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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
성별 | 남 |
생년 | 1722년(경종 2) |
몰년 | 1795년(정조 19) |
본관 | 안동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연(子淵), 호는 가재(可齋). 할아버지는 병곡(屛谷) 권구(權榘),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 류성룡의 후손이다.
[활동사항]
권명우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서 태어났다. 3~4세에 이미 글을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나 사장(詞章)에 힘쓰지 않고 ‘주충신(主忠信: 진실과 믿음을 중심으로 함)’을 신조로 도학(道學)에 전념하였다. 1742년(영조 18) 산사에 머물며 독서에 매진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 권구가 “속된 선비가 되지 말라. 성인은 ‘충신을 주로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는 벗하지 않는다[主忠信無友不如己者]’ 하는 정신으로 정진하였다.”라고 훈계하자 일생동안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훗날 향리에서 후학들을 모아 치심양성(治心養性: 마음과 본성을 닦고 기름)의 방법을 가르쳤다.
[학문과 사상]
권명우는 성품이 부드러웠으며 도학 공부는 북송(北宋)의 소옹, 장횡거, 주렴계, 정이천·정명도를 중심으로 한 저술과 제가(諸家)의 책을 두루 보았다. 시는 맑고 담백함을 위주로 했고 화려한 수사가 없었다. 문장은 의미의 전달을 중시하였고 독특한 형식을 숭상하지 않았다. 그 이외 지리(地理), 성수(星宿), 음양(陰陽) 등에도 두루 통달하였다.
[저술 및 작품]
만년에 역상(易象)에 관심을 기울여 『역상관규(易象管窺)』를 저술하였으며, 문집으로 『가재집(可齋集)』 4권 2책이 전한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