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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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鎭東 |
영어음역 | Gim Jindong |
이칭/별칭 | 정지(定之),소암(素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만기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정지(定之), 호는 소암(素巖). 아버지는 김경린(金景潾)이고, 어머니는 태안박씨(泰安朴氏)이다. 생부는 김경온(金景溫)이며, 생모는 진성이씨이다.
[활동사항]
김진동(金鎭東, 1727~1800)은 외가가 있는 선성(宣城)의 단사(丹砂)에서 태어났다. 1734년(영조 10) 부친상을 마치고 1737년(영조 13) 숙부 김경린(金景潾)에게 입적되었다. 1798년(정조 22) 경학(經學)으로 천거되어 선공감역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스승인 청벽(靑壁) 이수연(李守淵, 1693~1748)에게서 ‘소학동자(小學童子)’라는 칭송을 받았으나, 사마시에 한 번 응시한 후 더는 과거를 보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동암 류장원(柳長源) 및 천사 김종덕 등과 편지나 만남을 통하여 학문을 토론하였고, 계원(溪院)과 백사(栢社)에서 강회를 개설하자 원근의 학자들이 소문을 듣고 달려 왔다. 만년에 집 뒤의 산에 소암재(素巖齋)를 짓고, 산재의 양 옆에 문가(聞可)와 양정(養正)이라 이름 지은 방에서 독서하거나 후학을 양성하는 일로 여생을 보냈다. 1800년(정조 24) 노직(老職: 조선시대에 노인에게 내리는 특별히 직무가 없는 벼슬)으로 정3품 문관 품계인 통정대부에 올라 중추부첨사에 제수되었으며, 그 해 5월 4일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사상]
학문은 『소학(小學)』을 기본으로 하고,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을 표준으로 삼았다. 또한 주자서와 퇴계서를 항상 가까이 하였으며, 왕패(王覇)의 구분에 매우 엄격하였다. 자제를 가르치는 일에는 효제를 우선으로 하고 문예를 뒤로 하였으며, 혹 과실이 있어 꾸짖어도 의에 어긋나지 않게 하였다. 관직에 나아간 동생이나 아들들에게는 늘 영만지계(盈滿之戒)로 훈계하여 실행하게 하였다고 한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소암집(素巖集)』 6권 3책이 전한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의 동쪽 신목산(新沐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