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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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正源 |
영어음역 | Ryu Jeongwon |
이칭/별칭 | 순백(淳伯),삼산(三山),유정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부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백(淳伯), 호는 삼산(三山). 할아버지는 류상시(柳相時)이고, 아버지는 류석구(柳錫龜)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 이천린(李天麟)의 딸이다.
[활동사항]
류정원(柳正源, 1703~1761)은 1729년(영조 5) 생원시를 거쳐 1735년(영조 1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나 부친상을 당하여 오랫동안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749년(영조 25) 성균관전적을 거쳐 자인현감이 되어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이듬해 홍문록에 올랐다. 1751년(영조 27) 3월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와 윤광소(尹光紹)와 함께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시행하였고, 여강서원(廬江書院)에서 회강(會講)하였다. 1752년 정우량(鄭羽良)의 천거로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54년(영조 30) 세자시강원필선이 되었고, 이때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보도에 능력을 발휘하여 영조의 신임을 받았다. 같은 해 홍문관수찬과 사간원사간을 거쳐 교리에 임명되었다가, 통천군수로 나가서는 백성들의 진휼에 힘썼다. 1756년(영조 32) 원인손(元仁孫)과 채제공(蔡濟恭)의 추천으로 홍문관부교리가 되어 조정에 돌아온 뒤 왕의 특명으로 승정원동부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였다. 1758년(영조 34) 춘천현감에 부임하였다. 그 뒤 사간원대사간과 호조참의에 임명되었다.
[학문과 사상]
젊어서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섭렵하였고, 천문(天文)과 지지(地志) 및 음양(陰陽) 등을 비롯하여 병률(兵律)·도가(道家)에 깊이 침잠하였으나, 유학의 본지는 사서삼경(四書三經)에 있음을 깨닫고 사서삼경을 깊이 탐구하였다. 경학에 능하고 여러 학자들의 주석에도 밝아 으뜸가는 경연관으로 영조와 여러 신하들의 신임을 받았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문집인 『삼산집(三山集)』 8권 4책과 『역해참고(易解參考)』, 『하락지요(河洛指要)』, 「역전팔칙양생설(易傳八則陽生說)」이 있다.
[묘소]
묘소는 안동시 예안면 기사리 금적암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