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586 |
---|---|
한자 | 安幕洞 |
영어의미역 | Anmak-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안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진영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유래]
안막동은 자연마을인 안막골(일명 안막곡)에서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7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며질리를 통합하여 안막동이 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안막동을 일본식 지명인 안막정(安幕町)·명륜1정목(明倫1丁目)·명륜2정목으로 분리하였고,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안막정이 안막동으로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안막동이 되었고, 1997년 행정동인 명륜동(明倫洞) 관할이 되었다.
[자연환경]
안막동과 명륜동 사이에 청머리재가 있으며 안막동 멀리 아래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현황]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05,992㎡이며, 2011년 6월 30일 현재 총 1,530가구에 4,213명(남자 2,048명, 여자 2,16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안막천이 발원하는 지역으로 안막골·세명당·등애골·며질리·범석골·예장티골·정베기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위인 얼근방우 등이 있다.
안막골은 고려 공민왕 때 지금의 길원여자고등학교 자리에 순흥(順興) 안효자(安孝子)의 대묘막(大墓幕)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명당[일명 사명당골, 사명당곡(四溟堂谷)]은 사명당(四溟堂)이 머물렀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후대로 오면서 변음이 되어 세명당이 되었다. 등애골은 옛날 복숭아나무가 많아 꽃이 만발했다가 질 때 낙화가 골짜기에 가득했다 해서 도화곡(桃花谷)이라 하였는데 발음이 변하여 등애골이 되었다.
며질리(旀質里, 일명 머지리)는 고려 말 홍건적의 난 때 공민왕이 피신하여 머물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설에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여러 개의 골로 이루어져 세상이 시끄러울 때 은거하기에 알맞은 피난지로서 이곳에 은거하는 이에게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면 그저 “먼 곳에 있다.”라고 대답하므로 먼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원지(遠地)·원촌(遠村)·머질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범석골은 마을에 숲이 우거져 호랑이가 운다고 해서 호소골[虎嘯谷]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호소골이 범소골로 되고 다시 범석골로 변하였다. 또한 마을의 지형이 호두형(虎頭形)이므로 범소골이 되었다고도 한다.
예장티골은 처녀가 어린아이를 낳다 죽은 예기(藝妓)의 귀신을 마을에서 내쫓기 위해 당(堂)을 세우고 1년에 한 번씩 미역국을 끓여 제사를 지내 주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정베기[일명 정백(井伯)]는 마을 논 가운데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석수장이들이 정으로 돌을 깨기 위해 구멍을 뚫다가 세 번째 구멍에 정이 박혀 빠지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안막동은 한적한 주택 지대와 농촌 지역을 겸한 마을로 퇴계로 인근은 새로운 현대식 주택과 고층 아파트촌으로 변모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호인 안동 토계동 향산 고택,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1호인 안동 원촌동 치암 고택(恥巖古宅), 문수사, 월봉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