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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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相龜 |
영어공식명칭 | Lee Sanggu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민석 |
[정의]
개항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활동 사항]
이상구(李相龜)[1859~1927]는 1859년(철종 10) 3월 16일 공주[현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홍주의진에 가담하여 좌익장을 맡았다. 홍주의진은 청양과 홍주[현 충청남도 홍성군]를 중심으로 예산·부여·보령 등지의 항일 의병 세력이 민종식(閔宗植) 휘하에 대거 결집하여 부대를 형성하였다. 1906년 3월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흩어졌던 홍주의진은 5월 9일 홍산(鴻山)[현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서 다시 봉기하였고, 5월 19일 홍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후 5월 31일 성이 함락될 때까지 관군과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 내며 치열하게 항전하였다.
이상구는 홍주성이 함락될 때 일본군에게 사로잡혀 문석환(文奭煥)·신보균(申輔均)·최상집(崔相集)·안항식(安恒植) 등과 함께 일본 대마도로 압송되었다. 일본군 사령부에서 심문을 받을 때나 대마도 억류 중에도 일제의 만행을 꾸짖으며 의거의 정당성을 주장하였고, 최익현(崔益鉉)이 사망할 때까지 곁을 지키며 병구완을 하였다고 한다. 이상구는 1927년 7월 27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상구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