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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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城鄕校 |
영어공식명칭 | Seokseong Local Confucian School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석성향교길 18[석성리 648]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행묵 |
이전 시기/일시 | 1623년 - 석성향교 이전 중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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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692년 - 석성향교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54년 - 석성향교 명륜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68년 - 석성향교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82년 - 석성향교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83년 - 석성향교 내삼문·외삼문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87년 - 석성향교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98년 - 석성향교 성묘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4년 - 석성향교 대성전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9년 - 석성향교 명륜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49년 - 석성향교 동재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57년 - 석성향교 문묘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1년 - 석성향교 내삼문·외삼문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7년 - 석성향교 담장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3년 - 석성향교 대성전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5년 - 석성향교 명륜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3년 - 석성향교 수복실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5년 - 내삼문과 외삼문·담장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12월 23일 - 석성향교 충청남도 기념물 제126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석성향교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석성향교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석성향교길 18[석성리 648] |
성격 | 향교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대성전]|홑처마 팔작지붕[명륜당·동재] |
정면 칸수 | 3칸[대성전]|4칸[명륜당]|3칸[동재] |
측면 칸수 | 3칸[대성전]|3칸[명륜당]|2칸[동재] |
소유자 | 충청남도향교재단 |
관리자 | 석성향교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에 있는 조선 전기 향교.
[개설]
석성향교(石城鄕校)는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공립 교육 기관이다. 건립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조선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석성현 북쪽 1리에 있었다고 한다. 석성향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21년(광해군 13) 현재 자리에 석성향교를 중건하고 이후 여러 차례 중창 사업이 진행되었다. 석성향교는 1997년 12월 23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2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위치]
석성향교는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석성향교길 18[석성리 648]에 있다. 석성초등학교에서 500m 정도 북쪽으로 가면 나오는 향교골에 있다.
[변천]
석성향교는 조선 전기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건물이 타기 전 지역 유림 이경술과 남양 전씨가 대성전에 들어가 오현과 제현의 위패를 모시고 나왔다고 한다. 이때 신위를 산 위로 옮겨 안치하고 직접 초가를 지어 봉안하였다고 한다. 1621년(광해군 13) 석성현감 윤겸선이 향교를 중건할 뜻으로 지역 유림의 지원을 받아 향교를 착공하였다. 1623년 대성전, 명륜당, 동서재사, 내삼문, 외삼문이 완성되었다. 1692년(숙종 18) 석성현감 조신명이 향교를 중수하였고, 「중수기」에 따르면 명륜당과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을 중수하였다. 1754년 명륜당을 중수하고, 1868년과 1882년 각각 향교를 중수하였다. 1882년 비바람에 재사가 쓰러졌고, 1883년 내외 3문을 중수하였다. 1887년 도유사와 전직 재임 등이 돈을 모아 또다시 중수하였다. 1898년 성묘를 중수하고, 1904년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1929년 명륜당을 중수하였고, 1949년 동재를 중수하였다. 1957년 문묘를 중수하였고 1961년 내삼문과 외삼문을 중수하였다. 1967년 담장, 1973년 대성전, 1975년 명륜당, 1983년 수복실, 1985년 내삼문과 외삼문, 담장을 중수하였다. 20세기에 들어 여러 차례 중수가 이루어졌다.
[형태]
석성향교는 주산에서 흘러내린 능선 자락이 향교를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석성향교 정면에 동쪽으로 민가들이 있고 중간에 홍살문이 있다. 강학 공간인 명륜당을 전면에 두고 뒷편에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따르고 있다. 외삼문 동쪽에 남향한 수직사가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전면은 퇴칸이며 후면의 2열은 실내공간이다. 겹처마 맞배지붕에 1고주 5량집의 구조이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2고주 5량집의 구조이다. 기단은 자연석으로 덤벙주춧돌로 되어 있다. 동재는 명륜당에 직각 배치인데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훝처마 팔작지붕이며 1고주 5량집 구조이다. 내삼문과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가운데 칸을 높인 솟을대문이다.
[현황]
석성향교의 장의는 20명으로 부여군 초촌면 2명, 논산군 성동면 2명, 부여군 석성면 1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논산군 성동면이 참여한 것은 성동면이 조선 시대 석성현에 소속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남양 전씨, 향평 이씨, 풍양 조씨, 함양 오씨 등이 향교를 출입하고 있다. 석성향교 뒤쪽에는 행현사(行賢祠)가 있는데 석성향교의 위패를 모신 사람들과 조씨, 이씨 등 5현을 봉안하였다고 하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석성향교는 조선 시대 관학 기관으로 옛 석성현 지역의 교육과 교화를 위한 중심 기능을 담당하였다. 조선 시대 석성현 지역 사족들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