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7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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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洞祭 |
이칭/별칭 | 부락제,산신제,동신제,동고사,서낭고사,동지사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해마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위하여 올리는 마을 공동 제의.
[개설]
동제는 주로 자연 마을 단위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올리는 제의를 말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부락제, 산신제, 동신제 등으로 부르는데 청도는 동고사, 서낭고사, 동지사 등으로 부른다.
지리적으로 용각산을 기준으로 산동과 산서로 구분되는 청도에서는 동제의 형식 또한 지역차가 조금씩 나타난다. 산이 많은 산동 지역에서는 동제당의 형태가 소나무, 느티나무 등 나무가 흔하며 때때로 돌무더기를 쌓아 만든 조산(造山)이 신체이기도 하다. 평지가 많은 산서 지역도 나무가 동제당인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입석[선돌]과 당집을 동제당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제삿날은 산동과 산서 모두 음력으로 정월에서 대보름 사이에 택일하여 지내지만 많은 마을이 열나흗날에서 대보름으로 넘어가는 자정에 올린다. 제물은 개인 또는 부부가 담당하면서 유교식 기제사 형태로 변화되었지만, 산서 지역에서는 동제를 올릴 때 말린 해삼을 올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변천]
청도 지역의 동제는 다른 지역의 동제 변천과 맥을 같이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동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금지되었고 6·25 전쟁 때는 피난을 가느라 중단되기도 하였으며, 1970년에는 새마을 운동이 동제를 미신으로 간주하면서 많은 마을에서 중단되었다. 청도 또한 여러 지역에서 중단되었지만, 이웃 지역인 경상북도 경산시과 영천시, 대구광역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에서 동제를 이어 가고 있으며, 특히 청도 지역에 확산되었던 새마을 운동의 기세에 비하면 동제는 그 맥을 잘 이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청도 지역의 동제는 2000년 이후 농촌의 인구 감소와 노령화, 그리고 관광지 발달에 따른 외부인 유입 등의 이유로 중단된 곳이 많다. 특히 인구 감소와 노령화 등으로 제관을 담당할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청도 지역 동제의 중단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운문댐에서 운문사로 이어지는 산동 지역의 마을과 대구광역시에 이웃한 산서 지역의 각북면 오산리 일대는 외부인의 유입 때문에 동제가 중단되었다.
[현황]
마을마다 제삿날을 선택할 때 그 택일 이유에는 차이가 있지만 청도 지역의 동제는 시기적으로 대개 정월 초에서 대보름 사이에 이루어진다. 마을에 따라서는 정월 초사흗날[음력 1월 3일]에 올리기도 하는데 풍각면과 청도읍 일대의 많은 마을은 대보름이 아닌 정월 초사흗날 자정에 제를 올린다. 한 해를 시작하는 정초나 세시 풍속이며 행사가 많은 대보름에 제를 올리는 것은 그때 마을을 찾아오는 손님이 많기에 제를 올리기가 상당히 번거로워 초사흗날로 옮겼다고 한다. 동제를 모시는 기간 동안은 마을 사람들이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외부인이 들어올 수도 없어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많은 마을은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올리고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음력 8월과 10월에도 제를 올리는 마을도 있다. 제의 시간 또한 자정에서 마을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는 저녁 8시 또는 아침 9시로 옮겨 제를 올리는 마을이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주변이 조용하고 경건한 자정에 제를 올린다.
제관은 청도 지역의 대부분 마을에서 대내림을 통해 선출되었다. 차산리에서 전승되는 청도 차산 농악의 천왕기 역시 제관을 선출하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 대내림은 1960년대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2012년 현재는 청도 지역 내 어떤 마을에서도 대내림으로 제관을 선출하지는 않다. 대내림 대신에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에 닿고 복이 있는 사람으로 제관을 선출하는데 이 또한 인구 감소와 노령화로 선출이 어려워지자 이제는 마을에서 집마다 돌아가며 제관을 담당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서면과 매전면의 일부 마을에서는 제관을 담당할 남자가 부족하여 여자가 제관을 맡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부부가 모두 생존하는 집으로 제관을 선출한다.
제물은 소 한 마리 또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마을 잔치로 지냈던 과거의 동제와는 달리 대부분 간소화되었다. 청도읍 내리와 풍각면 금곡리에서는 2011년까지 소 한 마리와 돼지 한 마리를 잡았지만 이제는 간소화하여 소고기와 돼지고기로 대신하고 있다. 제물의 대부분은 유교식 기제사와 동일하지만, 마을에 따라서 여신인 할매를 모시면 술 대신 감주를 올리기도 하며 밥을 올리지 않는 마을도 있다. 산서 지역의 풍각면과 이서면 일대에서는 산신제를 올릴 때 건해삼을 올리고 제의를 마치면 이를 땅에 묻는데, 이러한 행위는 경산시과 대구광역시 등 이웃한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행위이기도 하다.
[의의와 평가]
산으로 둘러싸인 청도에서는 비교적 많은 마을에서 동제를 전승·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제당의 형태와 순서, 제관의 선출 방법, 그리고 제물의 간소화 등으로 많은 마을에서 과거의 모습과는 다른 동제를 올리고 있지만, 동신에 대한 믿음과 마을의 안녕에 대한 기원 등은 변함이 없다. 또한 중단했던 마을 중에서도 실질적으로 화를 입어서 다시 재개한 곳도 있었으며, 새로 이주한 마을 주민들이 기존 동민들과 동화되려고 적극적으로 동제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는 곳도 있다.
운문면 신원리는 외부인 유입으로 중단되었던 동제가 다시 적극적으로 유지되면서 도로변에 있는 동제당이 관광지로 알려지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청도 지역의 동제가 단순히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바라는 기원 제의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마을의 결속력을 유지하는 매개체이자 외부인과 젊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연결 고리 구실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