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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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泰章 |
영어음역 | Park Taej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수연 |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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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5 | 본관 수정 요청 | 반남박씨 본관의 변천 박응주가 고려 고종 때 반남 호장을 지냈기에 관향(貫鄕)을 반남(潘南)으로 삼았으나 조선 태종 12년에 반남이 나주의 속현(屬縣)이 되므로 태종이 ‘반성군(潘城君) 박은(朴訔)의 본향(本鄕)을 나주(羅州)로 내려 주었다’. 태종 12년 이후에는 관향을 나주로 삼아 지내 왔으나 230년이 지난 숙종 9년 (1683년) 제2차 세보 계해보 발간시 개칭한 이유가 “조선조에 이르러 행정구역이 나주에 병합된 관계로 나주로 칭하였으나, 나주에 속한 지명을 본관으로 삼는 박씨는 반남에 사는 박씨외 , 압해에 사는 박씨, 종의에 사는 박씨, 임성에 사는 박씨 모두가 나주 박씨라고 하면 혼동이 될 우려가 있는 고로 우리는 반남박씨라고 칭하였다.” 이후부터는 나주의 관향을 반남의 관향으로 바꾸게 되었다. 박태장은 5세 문정공 박상충의 아우 판서공 상진의 후손으로.박태장이 사마시에 합격한 현종 7년(1666년)은 서계공이 계해보 발간(1683년) 이전이기에 나주를 본관으로 하였으나, 아들 박지희가 과거시험에 급제한 숙종 39년(1713년)은 계해보가 발간후 이기에 반남박씨로 기재된것이다. 디지털청주문화대전에서는 아버지인 박태장은 나주박씨, 아들인 반남박씨 대종중에서는 박태장과 아들 박지희가 기록된 족보를 파일로 보내왔으며 이에 나주박씨로 기록된 박태장의 본관을 반남박씨로 수정하였음. |
2011.04.25 | 메타데이터 및 [가계] 소표제 수정 | 박응주가 고려 고종 때 반남 호장을 지냈기에 관향(貫鄕)을 반남(潘南)으로 삼았으나 조선 태종 12년에 반남이 나주의 속현(屬縣)이 되므로 태종이 ‘반성군(潘城君) 박은(朴?)의 본향(本鄕)을 나주(羅州)로 내려 주었다’. 태종 12년 이후에는 관향을 나주로 삼아 지내 왔으나 230년이 지난 숙종 9년 (1683년) 제2차 세보 계해보 발간시 개칭한 이유가 “조선조에 이르러 행정구역이 나주에 병합된 관계로 나주로 칭하였으나, 나주에 속한 지명을 본관으로 삼는 박씨는 반남에 사는 박씨외 , 압해에 사는 박씨, 종의에 사는 박씨, 임성에 사는 박씨 모두가 나주 박씨라고 하면 혼동이 될 우려가 있는 고로 우리는 반남박씨라고 칭하였다.” 이후부터는 나주의 관향을 반남의 관향으로 바꾸게 되었다. 박태장은 5세 문정공 박상충의 아우 판서공 상진의 후손으로.박태장이 사마시에 합격한 현종 7년(1666년)은 서계공이 계해보 발간(1683년) 이전이기에 나주를 본관으로 하였으나, 아들 박지희가 과거시험에 급제한 숙종 39년(1713년)은 계해보가 발간후 이기에 반남박씨로 기재된것이다. 디지털청주문화대전에서는 아버지인 박태장은 나주박씨, 아들인 반남박씨 대종중에서는 박태장과 아들 박지희가 기록된 족보를 파일로 보내왔으며 이에 나주박씨로 기록된 박태장의 본관을 반남박씨로 수정하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