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조선 후기 국권회복 운동으로 전개된 의병전쟁과 계몽운동, 그리고 구국운동은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조국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리하여 독립운동은 1919년 3·1운동과 1920년대 국내외의 무장투쟁으로 발전하여 근대적인 국민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민족운동으로 승화되었으며, 1930년대 이후 군국주의 일본의 전쟁...
장시표(張時杓)[1819~1894]의 초명은 응표(應杓), 호는 운고(雲皐)이다. 여헌(旅軒)의 후손으로 인동부 진평리에서 장봉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증이조참판 장보에게 입양되었다. 파리장서를 초안한 유림단 대표 회당 장석영이 아들이다. 장시표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 14~15세 때 벌써 경서(經書)에 통달했다. 1849년(헌종 15) 문...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안일암(安逸庵)에서 달성친목회(達城親睦會)와 강의원간친회(講議園懇親會)를 기반으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1915년 2월 28일에 달성친목회의 회원 서상일 등 대구를 기반으로 하는 부호·중산층·계몽주의자·신학이수자·유생들이 국권 회복을 위해 국내의 독립운동 세력과 만주 독립운동 단체,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과 상호 연결되어 국내·외 독...
장석영(張錫英)은 1851년 10월 24일 조상 대대의 세거지인 칠곡군 약목면 각산동에서 참판을 역임한 장시표의 아들로 출생하여 1926년 6월 8일 향년 76세로 졸하였다. 자는 순화(舜華) 또는 중범(仲範)이며, 호는 회당(晦堂)이나 처음에는 추관(秋觀)이라 하였다.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을 스승으로 모신 장석영은, 이진상의 이른바 성리학(性理學)과...
각산1리에는 사미헌 선생 외에도 훌륭한 인물이 많다. 사미헌 장복추[1815~1900] 선생은 은일(隱逸)[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사람에게 내리는 벼슬]로 경상도도사와 가선대부부호군으로 개화기 유학의 선비들이 우러러보는 큰 학자였다. 장시윤은 의금부도사를 지냈고, 장응표[후에 시표로 이름을 바꿈]는 문과에 급제한 뒤 이조참판을 지냈다. 장지복, 장대지 등은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