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 1월 12일 칠곡군 약목면 덕산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군자금을 모아 상해로 가려다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치른 후, 1925년 다시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 지령서를 부호(富豪)들에게 배포하고 모금하던 중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형을 받았다. 1920년 북만주(北滿洲)로 가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협의하고 돌아와, 군자금 조달책으로...
1919년 3·1운동 후 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의 장석영을 포함한 유림계가 파리 강회회의에 독립을 요구한 운동. 1919년 3·1운동의 독립선언에 서명할 기회를 놓친 유림(儒林)계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여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요구하고자 하였다. 이에 김창숙은 137인이 서명한 ‘파리장서’를 휴대하고 상해로 향하였고, 국내에서는 서명자에 대한 대대적인...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5년 1월 29일 칠곡군 왜관면 석전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의 내몽고 지역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 모집에 참여하여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중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파리장서(巴里長書)를 가지고 중국에 가서 활동하던 김창숙은 독립운동의 활로를 열 방안으로, 내몽고(內蒙古) 지역황무지에...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유림(儒林) 대표 독립운동가. 1851년(철종 2) 10월 24일에 칠곡군 약목면 각산동[현 약목면 각산리]에서 전 형조참판(刑曹參判) 장시표(張時杓)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 후기 성리학의 거두 이진상(李震相)에게 사사하였다.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지방보상 회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때,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전국 유림들의 독...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미국 교포 독립운동가. 1883년 6월 15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동[현 남계리]에서 태어나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고향에 일시 귀국하였다. 1917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 가 와이오밍주(州)에 정착한 후, '대한인 국민회(大韓人 國民會)'에 참여하여 한인(韓人) 결집을 선도하고, 상해 임시정부의 애국공채(愛國公債)를 발매·송금하...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0년 7월 26일 칠곡군 지천면 신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 학생운동가 출신들로 무정부주의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고 1926년 연맹 내에 파괴단(破壞團)을 만들어 주요 관서와 일인(日人) 점포 폭파 등을 추진하던 중에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받았다. 1925년 9월 29일 대구의 서동성(徐東星), 경남의 방한상(方漢相), 칠곡의 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