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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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𣴴- |
영어음역 | Jang Hae |
이칭/별칭 | 거원(巨原),삼우당(三優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영복 |
[정의]
조선 중기 칠곡 지역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거원(巨原), 호는 삼우당(三優堂).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로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 인의동]과 칠곡군 석적읍[성곡·중리·반계리], 기산면 각산리, 북삼면 율리, 가산면에 집성·세거한다.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문하에서 수업하고 1642년(인조 20)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합격 후 여러 차례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포위됨에 어버이의 명과 스승의 가르침으로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이 되어 상주(尙州) 북천까지 출정했으나 이미 싸움을 그만두고 서로 화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칼을 버리고 통곡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1677년(숙종 3)에 향년 68세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