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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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潑妻星山李氏 |
영어의미역 | Lady Seongsan Yi, Song Bal's Wife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영복 |
성격 | 열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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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
성별 | 여 |
생년 | 미상 |
몰년 | 미상 |
본관 | 성산 |
대표관직 | 첨정(僉正) |
[정의]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열녀.
[가계]
열녀 성산이씨는 고려시대에 간의대부총부의랑(諫議大夫摠部議郞)을 역임하고 야성군(冶城君)에 봉해진 맹영(孟英)의 14세손으로 첨정(僉正)을 역임한 만호(萬戶) 송발(宋潑)의 아내이다.
[활동사항]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송발은 벼슬에 있어 오지 못하고 이씨 부인과 식구들만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로 피난 와서 살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병이 짐승처럼 덤벼들면서 겁탈하려 하자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서는 당해낼 수가 없어서 죽음으로 정절을 지키고자 사라지(沙羅池)[현재 삼청동과 연화동 일대]에 몸을 던져 세상을 마쳤다. 송발의 종형(從兄) 송협(宋浹)은 임진왜란 때 순국하였고, 송협의 동생 송흡(宋洽)도 평양판관을 지냈는데 임진왜란 때 순국하여 세 사람이 한 집안에서 순절하였으니 뛰어난 절의는 오늘까지도 빛나고 있다.
[상훈과 추모]
여자로서 뜻을 굳혀 정절을 지킨 행위가 임금에게 아뢰어져 옛 사라지 제방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였다. 왜관~대구 국도 확장 공사로 인하여 문중에서 피망골로 옮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