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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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呂東宣 |
영어의미역 | Victor Louis Tourneux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장영복 |
[정의]
일제강점기 가실성당에서 사목한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 신부.
[개설]
여동선(Victor Louris Tourneux) 신부는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으로 1903년 6월 21일 사제로 서품된 후 같은 해 가을 10월 10일에 조선에 왔다. 처음 9년간 전남 무안·나주·목포·완도 등지에서 사목하다가 1911년 가실성당 5대 신부로 부임하였다.
[활동사항]
1944년까지 33년간을 가실성당에서 재임하였는데, 초기에는 칠곡군·군위군·선산군·안동군·고령군·의성군·성주군·김천군·거창군까지 모두 관할하였다. 1922년에 김천군과 거창군, 1932년에 칠곡군 동명, 1935년에는 성주군이 관할구역에서 분리되어 나갈 때 새 성당 살림에 많은 경비를 부담하였다.
1923년에 가실성당을 지었다. 가실성당의 설계는 박도행(V. L. Poisnel) 신부가 하고, 건축양식은 신(新) 고딕식 양식을 띤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여동선 신부의 프랑스 본가에서 건축비를 부담하였다. 붉은 벽돌은 건축 장소에서 굽고, 중국인 기능공을 동원하여 직접 공사 감독을 철저히 하였다.
1928년 6월 21일 사제 서품 25주년 은경축 행사가 화려하게 거행되었다. 그 해에는 왜관성당의 건축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왜관성당도 설계 역시 박도행 신부가 하였으며 건축양식도 비슷하였다. 여동선 신부는 가실성당과 왜관성당 초대 신부를 겸임하였다. 왜관성당과 상주성당 신축에 많은 경비를 부담하였으며, 가실 일대에 많은 토지를 사들여 신자들에게 경작토록 하여 교회 사업 뿐 아니라 사회사업에도 크게 이바지 하였다. 1944년 지병인 천식의 요양을 위해 대구 남산동 사제관으로 옮겼으나 65세를 일기로 임종하여 대구의 성직자 묘소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