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김성진(金聲振)이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홍무적(洪茂績) 등과 인목대비의 폐비에 반대하는 복합상소를 올렸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금고형에 처해졌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다. 162...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자선(子先), 호는 취헌(翠軒).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유홍(兪泓)이며, 오위도총부부총관을 역임한 유대일(兪大逸)이며,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인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유백증은 1612년(광해군4) 진사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615년에 승문원부정자...
1612년 신분 차별에 불만을 품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 서얼 박응서 등이 주도하여 역모를 꾀했다가 발각되면서 계축옥사로 확대된 사건. 조선은 서얼을 차별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서얼들은 출세하는 데 제한을 받았으므로 서얼 출신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박응서(朴應犀)·서양갑(徐羊甲)·심우영(沈友英)·이준경(李俊耕)·박치인(朴致仁)·...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경관(景觀), 호는 설죽(雪竹)이다. 참봉 조유백(趙惟白)의 아들이다. 1606년(선조 39)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바로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 1608년(선조 41)에 가주서(假注書)가 되었으며 1610년(광해군 2)에는 황해도사(黃海道事)를 역임하였다. 1615년(광해군 7)부...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중심(仲深). 내금장(內禁將) 이정(以貞)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인서(李麟瑞)와 더불어 의병을 모아 전력을 다하여 활동하였다. 1615년(광해군 7) 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며 1617년 11월에는 생원의 대표로 진사 김이일(金以一) 등과 함께 인목대비 폐비 문제를 공론에 따라 처리하여 대의를 밝히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