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산. 천지개벽할 때에 달천강의 상류인 보은 속리산으로부터 작은 산덩어리가 떠내려 오는데, 그 위에 개가 타고 내려와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개가 충주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해서 견문산(犬門山)이 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렇듯 견문산이라고 하던 것이 어느새 점 하나가 빠져 대문산(大門山)이라고 쓰여 왔는데, 견문산으로 환원하는 것이 옳다고...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대흥사는 1956년 3월에 승려 오법우에 의해 창건되었다. 충주 탄금대(彈琴臺) 북쪽 계곡의 끝 부분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장공신립장군순절비각이 옆에 있다. 대흥사는 전설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때 창건주 미상의 용흥사가 있었던 곳으로, 거란족의 침략을 당하여 사찰이 소...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악성 우륵의 공적을 추모하는 비. 우륵(于勒)은 원래 가야국(伽倻國) 사람으로, 가실왕(嘉悉王)이 성열현(省熱縣)의 악사 우륵에게 가야금 곡조 12곡을 짓게 하였다. 후에 우륵이 신라로 귀화함에 진흥왕이 국원성에서 살게 하였다. 이후 진흥왕은 우륵의 연주를 듣고 감동하여 대나마(大奈麻) 계고(階古), 법지(法知), 대사(大舍) 만...
고대 삼국시대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음악가. 우륵은 가야의 가실왕(嘉實王) 시대 사람으로 현 경상북도 고령 지역으로 일컬어지는 성열현(省熱縣)에서 태어났다. 가실왕의 재위 기간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륵이 귀화했을 당시 신라가 진흥왕[540~575]의 재위 기간이었던 것으로 보아 우륵도 500년대 초반에 태어나 중반을 넘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야금은 원래 가...
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진흥왕은 재위 12년째를 맞은 551년에 나라를 새롭게 열겠다는 의지로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고친다. 개국의 의지를 실천하여 신라의 중흥을 이룩한 진흥왕의 일대 사업은 국경 지대의 요충인 낭성(娘城) 순수에서 우륵의 신가(하림조)를 접한 이후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진흥왕과 우륵(于勒)의 만남에는 어떠한 수수께끼가 있음이 분명하다. 다음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대문산의 산정. 충주시 칠금동에 소재한 구릉지인 대문산(大門山) 산정으로, 이곳에서 우륵(于勒)의 가야금(伽倻琴)에 대한 일화가 전해오고, 임진왜란 당시 신립(申砬) 장군의 격전지로 유명한 곳이다. 신라 552년(진흥왕 13) 가야국에서 귀화한 악사(樂士) 우륵이 이곳에서 금(琴)을 탔다[彈]는 것에서 탄금대(彈琴臺)라는 지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