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4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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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原 |
영어음역 | Daewon |
이칭/별칭 | 충주,예성,국원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이창훈 |
성격 | 고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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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문헌 | 『고려사(高麗史)』|『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정의]
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옛 이름.
[개설]
『고려사(高麗史)』에는 충주의 다른 이름으로 대원(大原)과 예성(蘂城)이 등장한다. 그 중 대원은 고려 성종이 정한 별호라고 명기하고 있기 때문에, 성종 이후부터 충주라는 공식 명칭과 함께 별칭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명칭유래]
충주를 대원이라 부른 사례가 너무 단편적이고 부족하기 때문에 유래를 확인하기는 어렵고, 다만 고려 성종이 정하였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
[형성 및 변천]
충주라는 지명이 정해진 고려 940년(태조 23) 이후 공식적으로는 충주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충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은 충주목·국원경 등이 있었지만, 공식 명칭은 충주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록]
대원이란 명칭은 『고려사』의 세 곳에서 보이는데, 「지리지(地理志)」와 「식화지(食貨志)」, 「열전(列傳)」에서 각각 언급되고 있다. 먼저 「지리지」의 충주목 기사에는 “충주목은 … 대원(大原)[성종이 정한 명칭이다] 또는 예성(蘂城)[고종 42년에 익안현으로 승격시켰다]이라고도 부르며 …”라고 하여 별호를 명기하고 있다.
「열전」에서는 “유진은 충주 대원현(忠州大原縣) 사람이다.”라는 기록을 전하고 있다. 한편 『고려사』「식화지」의 조운(漕運) 관련 기록에는 “여수포(麗水浦)는 이전에 금천포(金遷浦)라고 하였는데 대원군(大原郡)에 있다.”는 구절이 보인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충주 가흥창이 옛날에는 금천(金遷)의 서쪽 기슭에 있었다고 하므로, 대원군도 충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