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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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孝里-遺物散布地 |
영어의미역 | Archeological Site in Sinhyo-ri Jingo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물산포지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2리 진골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길경택 |
성격 | 유물산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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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2리 진골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2리 진골에 있는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개설]
노은면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확인된다. 몽고가 고려를 침입할 때 천룡산성에서 몽고병과 싸우다가 힘이 부족하여 항복한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노은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보련사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 6년(1424) 4월 5일의 기록에, 불교를 교종과 선종으로 나누고 36개소의 절만 남기자는 건의를 받아들이는 내용이 있다. 즉, 교종에 소속된 18개의 사찰 가운데 보련사가 남게 된다. 보련사는 150결의 원속전을 받으며 70명의 거승을 두는 대찰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보은 법주사의 200결의 전, 100명의 거승과 비교되는 자료이다.
[위치]
구 수룡초등학교에서 진골저수지가의 원법사를 지나면 각종 묘목을 심어 놓은 농장이 나온다. 신효리 진골 유물산포지는 이 농장 주변에 위치한다. 보련사지로 추정되는 곳과 한포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으로 마주보는 위치에 있다.
[출토유물]
유물은 토기편·청자편·백자 조각이 수습되었다. 유물산포지 주변에는 토기류가 많이 보이며, 자기편이나 쇠똥조각도 눈에 띈다. 수습된 토기 조각은 회흑색 경질 토기로 몸통의 두께만 1.2~1.6㎝인 큰 항아리 조각이다. 이 토기는 굽은 없으나 바닥과 몸통의 연결 부위에 문살무늬가 타날된 것이 보이며, 외면에는 음각선이 뚜렷이 남아 있고, 내면에는 물레 흔적이 있다. 이런 토기류가 다수 확인된다.
자기 조각 가운데는 초벌구이를 한 것이 눈에 띈다. 청자 조각은 정선된 바탕흙을 사용했으나, 유약의 시유 상태가 좋지 않다. 내저원각선이 남아 있으며, 모래받침 흔적이 관찰된다.
[의의와 평가]
신효리 진골 유물산포지는 유물이 산만하게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비교적 집중도가 떨어지며, 농장이 조성되면서 형질이 크게 변경되어 훼손이 심하게 진행된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