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6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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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下九岩里-遺蹟 |
영어의미역 | Relics in Haguam-ri Keungo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 상구마을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조선/조선 |
집필자 | 강민식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 상구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유적.
[개설]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 구간에서 발굴 조사된 유적으로, 숯가마, 돌방무덤, 돌덧널무덤, 야철유구, 움무덤, 구상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위치]
중부내륙고속도로 구간 능골과 도장골 유적 사이에 있다. 중앙탑면에서 노은면 방면으로 520번 지방 도로를 따라가면 왼쪽으로 건국대학교 농장 위쪽 산자락에 위치한다.
[변천]
1997년 지표 조사 당시 토기편과 할석들이 보여 고분군으로 판단되었던 곳이다. 2001년 시굴 조사에서는 해당 지역의 동남쪽 끝에서 돌덧널무덤 1기와 야철지로 여겨지는 슬래그, 석렬이 발견되었다. 이 일대에 대한 정밀 발굴 조사를 통해 백탄요 3기, 돌방무덤 4기, 돌덧널무덤 3기, 석렬유구 1기, 야철유구 3기, 흑탄요 5기, 조선시대 움무덤 3기, 구상유구 4기 등 모두 26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형태]
주요 유구의 현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하구암리 큰골 유적에서는 모두 8기(백탄요 3, 흑탄요 5)의 숯가마가 발견되었다. 최근 조사 사례가 급증하여 크게 주목받는 백탄요는 등고선을 따라 길다란 모양인데, 대략 4세기 전반에서 중반에 걸쳐 사용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원형, 장타원형 등 여러 모양의 흑탄요는 조선 후기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야철유구로는 제련노지 2기와 단야노지 1기가 조사되었다.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전기의 것으로 보인다. 무덤 유구로는 돌방무덤 4기와 돌덧널무덤 3기, 조선시대 움무덤 3기 등 모두 10기가 조사되었다. 돌방무덤과 돌덧널무덤은 주변에 널리 분포하는 신라 고분과 같은 유형의 것으로, 6세기 중·후반 이후의 무덤들이다.
무덤방은 경사면을 평탄하게 파내어 반지하식으로 할석을 쌓아 네 벽을 마련하였다. 1호 돌방무덤에는 둘레돌을 둘렀다. 3호 돌방무덤을 제외하면 대체로 정방형으로, 모두 널길[羨道]이 시설되었다. 3호와 4호 돌방무덤은 두 차례에 걸쳐 추가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1호와 2호 돌방무덤에서는 출토된 유물이 없다. 3호 돌방무덤에서는 뚜껑병, 병, 굽다리접시,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 완 등이, 4호 돌방무덤에서는 직구호,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 뚜껑, 가락바퀴 등이 수습되었다. 이중 3호 돌방무덤 출토 유물은 7세기 후반 이후로 편년되는 것으로, 다른 돌방무덤에 비해 늦게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3기가 확인된 돌덧널무덤은 모두 등고선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돌덧널은 지하식, 또는 반지하식 구조로, 생토면에 그대로 할석을 쌓아올렸다. 돌방무덤에 비해 비교적 늦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1호 돌덧널무덤은 길이 1m 정도의 판석으로 덮개돌로 사용하였고, 통일신라 말기로 편년되는 대부완 1점이 수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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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구암리 큰골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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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구암리 큰골 유적
[현황]
하구암리 큰골 유적은 고속도로 건설 구간에 대한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으로 현재 고속도로가 개설되면서 모두 파괴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