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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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祥 |
영어음역 | Bak Sang |
이칭/별칭 | 창세(昌世),눌재(訥齋),문간(文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세영 |
[정의]
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訥齋), 시호는 문간(文簡). 증조할아버지는 박광리(朴光理), 할아버지는 박소(朴蘇)이다. 아버지는 진사 박지흥(朴智興), 어머니는 생원 서종하(徐宗夏)의 딸이다.
[활동사항]
박상은 1496년(연산군 2) 진사시에 급제하고, 1501년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가 되었다. 이후 성균관박사, 승문원교검(承文院校檢), 시강원사서, 병조좌랑을 거쳐 1505년 전라도도사를 지냈다. 1506년 사간원헌납이 되어 종친들의 중용을 반대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투옥되었다. 성균관생과 재상들의 상소로 풀려났으나 인사를 담당하는 이조의 미움을 사서 한산군수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사헌부가 사헌부의 관리와 사간원의 관리는 함부로 외직으로 부임하는 것이 불가하다고 반대하여 종묘서령(宗廟署令)·소격서령(昭格署令)으로 다시 옮겼으나, 부모 봉양을 이유로 다시 임피현령으로 부임하였다.
1511년(중종 6) 홍문관수찬, 집현전응교를 거쳐 담양부사로 부임했다. 1515년 순창군수 김정(金淨)과 함께 상소하여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愼氏)의 복위를 주장하고, 박원종(朴元宗) 등 3훈신이 임금을 협박하여 국모를 내쫓은 죄를 바로잡기를 청하다가 중종의 노여움을 사서 전라도 나주 오림역으로 유배되었다. 1516년 유배에서 풀려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장악첨정(掌樂僉正)을 지내고 1517년 순천부사로 부임했으나 모친상을 당하여 사임하였다. 1519년 선공감정(繕工監正), 1521년 상주목사, 충주목사를 지냈다.
충주목사 시절 박상에 대하여 충청감사 김굉(金硡)이 “충주목사 박상은 청렴하고 근신하여 직분을 지키고 일을 다스리는 데에 숙달하였으며 마음을 써서 어루만지고 돌보아 백성이 혜택을 많이 받습니다.”라고 상신하여 왕에게 표리(상으로 주는 직물)를 하사받았다. 1526년 문과중시(승진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나 1727년 작은 죄목으로 나주목사로 좌천되었다. 1529년 병으로 나주목사를 사임하고 낙향하여 1530년 별세했다.
[학문과 사상]
박상은 성현(成俔)·신광한(申光漢)·황정욱(黃廷彧) 등과 함께 서거정(徐居正) 이후 4가(四家)로 칭송된 문장가였다. 또한 조광조(趙光祖)는 단경왕후 신씨 복위에 관한 상소는 강상(綱常)을 바로잡은 충언이라고 극구 칭찬하였다.
[저술 및 작품]
『눌재집』은 박상의 시문집으로 16권 6책의 목판본이다. 1547년(명종 2) 아우 박우(朴祐)가 13권 4책으로 편집, 간행하였고 1684년(숙종 10) 김수항(金壽恒)이 속집(續集)과 부집(附集)을 간행하였다. 1795년(정조 19) 정조의 명에 의해 중간했으나 불에 탔으며, 1843년(헌종 9) 조철영(趙徹永)이 16권 6책으로 다시 엮어 간행하였다. 충주박씨 문중의 『눌재집』 목판각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 송호영당에 있으며 1995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광주광역시 월봉서원(月峰書院)에 배향되었고 1688년(숙종 14)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