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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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智國師 |
영어의미역 | Leader of the Nation Daeji |
이칭/별칭 | 원응존자(圓應尊者),지감국사(智鑑國師),한찬영(韓粲英),고저(古樗),목암(木庵),혜월원명(慧月圓明)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상기 |
[정의]
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승려.
[가계]
속명은 한찬영(韓粲英).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고저(古樗). 호는 목암(木庵)·혜월원명(慧月圓明)·지감원명(智鑑圓明). 아버지는 사복직장에 재직했던 한적이고 어머니는 청주곽씨이다.
[활동사항]
대지국사는 1341년 삼각산 중흥사에서 태고화상 보우를 은사로 삭발하고 법을 받았다. 승과에 응시한 23세 전까지 보우에게 5년, 정혜국사에게 3년, 수자화상에게 1년간 공부를 했다. 보우에게서 법을 받았고, 정혜국사로부터는 수행을 배웠으며, 수자화상을 통해서 참선의 진정한 의미와 방법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53년 승과에 장원을 하면서 대흥사의 주지가 되었다. 1359년 봄 공민왕의 부름을 받아 승록사의 양가도승록대사(兩街都僧錄大師)가 되었다. 이후 왕명에 의해 석남사, 월남사, 신광사, 운문사 등 중요한 절의 주지를 맡아 선법을 설하였다. 1372년 공민왕으로부터 ‘정지원명무애국일대선사(淨智圓明無礙國一大禪師)’라는 호와 함께 금란가사, 바리때, 묘필(妙筆), 관음대사상 등을 하사받았다.
1374년 우왕으로부터 가지사 주지로 임명받고 ‘무애현오국일도대선사(無礙玄悟國一都大禪師)’라는 칭호를 하사받았다. 3년 동안 가지사 주지로 있은 후 1382년까지 가지사 주지와 태자사 주지를 병행하여 수행하였다. 1383년 3월22일 왕사로 책봉받고 ‘원응존자(圓應尊者)’라는 칭호를 하사받았다. 또한 충주 억정사의 주지로 임명되었다. 7년간의 억정사 주지를 지낸 후 1390년 6월 28일 마지막 게송을 읊은 후 세수 63세, 법랍 49세로 입적하였다.
[학문과 사상]
저술이 남아 있지 않아 대지국사의 사상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태고화상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만법귀일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의 화두를 참구하면서 태고화상의 자심(自心) 사상을 전파하는 데 노력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저술 및 작품]
입적하기 전에 읊은 7언 절구 형식의 게송이 전해지고 있다.
바로 내가 보고 들은 것은 보고 들은 것이 아니어서/그 소리와 색을 그대에게 가히 드러내 보여줄 수가 없구나/그 가운데서 만약 세상이 온통 무사(無事)하다는 사실을 안다면/체와 용이 나누어지든 나누어지지 않든 아무 상관이 없다.
[묘소]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억정사 동쪽에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
공양왕이 시호 지감(智鑑)과 탑호 혜월원명(慧月圓明)를 내렸다. 1393년 10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시호 대지(大智)와 탑호 지감원명(智鑑圓明)을 내렸다. 1393년 조선 태조의 명에 의해 억정사 동쪽에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가 건립되었다. 당시 비문은 대사성 박의중이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