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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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州石氏 |
영어의미역 | Chung Seok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집필자 | 최일성 |
[정의]
석린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연원]
충주석씨는 석린(石隣)을 시조로 한다. 『충주석씨세보』에 의하면 석린은 1174년(명종 4)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예성군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석린을 시조로 하고 충주(옛 이름은 예성)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한편으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 옛 문헌에서는 고려 충렬왕 때 밀직부사를 지낸 석주(石冑)를 시조로 기록하고 있다.
[입향경위]
봉작은 출신 지역이나 거주 지역과 연관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조 석린이 예성군으로 봉해졌다는 점에서 석린의 선대부터 충주에 세거하고 있었거나 석린 대에서부터 거주했을 것으로 보이나 고증할 만한 문헌이 없어 정확한 시기를 알 기 어렵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여러 지리지와 성씨 관련 문헌에 충주의 세거 성씨로 기록되어 있고, 조선 세종 때 인물인 석여명(石汝明)의 단소(壇所)가 충주에 있는 것으로 봐서 충주석씨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줄곧 충주에 세거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황]
충주석씨는 1950년대까지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옛 충주목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0년을 기준으로 충주석씨는 전국에 11,011가구 35,461명, 충청북도에 436가구 1,437명, 충주시에 126가구 441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관련유적]
석여명 단소가 충청북도 신니면 문락리 회문마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