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3278 |
---|---|
한자 | 李瀷 |
영어음역 | Yi Ik |
이칭/별칭 | 형여(泂如),간옹(艮翁),옥포(玉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일성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증영의정 이란(李鸞)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증좌찬성 이자침(李自琛)이다. 아버지는 훈련원판관을 지낸 이유일(李惟一)이고, 어머니는 참봉 민학용(閔學用)의 딸이다.
[활동사항]
1612년(광해군 4)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5년(광해군 7) 사서(司書)를 거쳐 사헌부정언이 되었다. 이때 이이첨이 대사헌에 기용되어 폐모론(廢母論)을 적극 주장하자 이익이 폐모론의 반대 상소를 올렸다. 이에 사헌부에서 이익이 올린 상소문을 트집 잡아 죄 주기를 청하였다.
사헌부의 상소문 내용은, “신들이 삼가 보건대, 이익이 아뢴 내용에 ‘내외가 서로 체결하여 태아검(太阿劍)의 자루가 이미 전도되었다’는 등의 말이 있어서, 성상께서 하문하셨는데도 끝까지 사실대로 답하지 않았으니, 신들 역시 몹시 통분합니다. 그러므로 삭출(削黜)하거나 유배 보내더라도 참으로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618년(광해군 10) 광해군이 “이익이 말한 ‘태아검을 거꾸로 잡았다’는 설은 국문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는 언관(言官)이었으니 사형을 감하여 제주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하라.”하여 제주로 유배되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있는데, 묘갈(墓碣)은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이 지었다.
[상훈과 추모]
제주도에 단비(壇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