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4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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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妙法蓮華經 卷四~七[東區] |
영어공식명칭 | Saddharmapundarika Sutra (The Lotus Sutral, Volumes 4~7)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도학동 35]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소진 |
간행 시기/일시 | 1405년 - 묘법연화경 권4~7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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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4년 1월 20일 - 묘법연화경 권4~7, 보물 제961-3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묘법연화경 권4~7, 보물로 재지정 |
소장처 | 묘법연화경 권4~7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도학동 35] |
성격 | 불경 |
간행자 | 성달생|성개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위치한 동화사 성보박물관에서 위탁보관 중인 조선전기 불경.
[개설]
묘법연화경 권4~7(妙法蓮華經卷四~七)은 2012년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원이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는 용연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에서 발견한 불경이다.
[저자]
묘법연화경 권4~7은 1405년(태종 5)에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에 있는 안심사(安心社)에서 성달생(成達生)[1376~1444]과 성개(成槪)[?~1440] 형제가 간행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묘법연화경 권4~7 권수 「변상도(變相圖)」의 왼편에 정씨(鄭氏)가 죽은 남편 왕씨(王氏)가 부처·보살이 사는 청정한 세상으로 가는 것을 기원하기 위하여 화공(畵工)[그림을 전문으로 하는 장인]을 시켜 그림을 그리고, 판각하여 유통시킨다는 조성경위와 권7의 말미에 간행사실을 밝히는 권근(權近)[1352~1409]의 발문, 김씨 등 시주자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권4의 권수 서명이 1행에 『묘법연화경』으로 되어 있다. 다음 행에 ‘온릉 개원련사 비구 계환 해(溫陵開元蓮寺比丘戒環解)’라는 기록으로 보아, 『묘법연화경』이 송나라 계환의 주해본을 저본으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서지]
묘법연화경 권4~7은 목판본으로 전7책 중 4권 1책의 낙질본[한 질을 이루고 있는 책에서 권책수가 빠진 것]이다. 판식은 위아래 단변(單邊)[하나의 선], 광고(匡高)[본문 높이] 21.4㎝, 계선(界線)[본문의 각 행 사이에 그어진 선]은 없다. 크기는 세로 26.9㎝, 가로 15.8㎝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변란이 상하 단변으로 중앙에 별도 판심부[각 면의 중앙 행간]는 없고, 어미도 보이지 않는다. 권수제는 ‘묘법연화경’이고 판심제는 위에 ‘법(法)’이란 약서명이 기재되어 있어 다른 계통의 판본에서 보이는 ‘법화(法華)’ 또는 『법화경(法華經)』과 구분되며, 아래로 권수 및 장수 표시가 나타나 있다. 종이의 재질은 조선 초기 불경 인출(印出)[책판에 박아 냄]에 주로 사용되었던 인경지(印經紙)로 매우 얇은 저지(楮紙)[닥종이]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구성/내용]
용연사본 묘법연화경 권4~7의 권말에는 1405년의 간행 사실을 밝히는 권근이 쓴 발문이 있다. 발문에는 조계종 대선(大禪)인 신희(信希) 등이 오래전부터 『법화경』을 신봉해 왔는데, 이제 연로하여 눈이 침침하게 되어 독서에 불편하였다. 그래서 이런 노승려를 위해서 글씨를 중자(中字)로 써서 간행할 계획이 있었다. 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시묘하던 성달생이 법화경 간행 계획을 전해 듣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추복(追福)을 기원할 생각으로 아우인 성개와 함께 선사(繕寫)[부족한 점을 고치고 보충하여 정서함]하게 되었다. 선사가 완료되자 신문이 이를 가지고 전라도 운제현의 도솔산 안심사(安心寺)로 가서 판각해 간행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간행된 『묘법연화경』은 1655년(효종 6) 용연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제작 당시에 불상에 복장되었다.
[의의와 평가]
묘법연화경 권4~7은 조선 초기 서지학과 불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묘법연화경 권4~7은 2014년 1월 20일 보물 제961-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