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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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募文錦 住宅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4길 144[남산동 232-8]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고소진 |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건립 주택.
[개설]
모문금 주택은 1937년 건립되었으며, 설계자와 시공자가 중국인 모문금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교구장 주교 드망즈(Demange)에게 의뢰받아 모문금은 1901년부터 대구 내 종교 건축물을 건축하였다. 모문금은 종교 계통의 건물뿐만 아니라 서병국 주택을 건축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위치]
모문금 주택은 대구가톨릭대학교 유스티노캠퍼스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다.
[변천]
모문금 주택은 1974년 1층 각 방을 온돌방으로 개조하였다. 외벽 일부에 화강석 다듬돌을 붙이고, 지붕 동판을 석면 슬레이트로 개조하였다. 2005년 3층의 콘크리트 건물로 신축되는 과정에서 모문금 주택은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모문금 주택의 외관은 콘크리트 기초 위에 붉은벽돌을 쌓아 벽면을 구성한 조적조 방식이었다. 창문으로는 평아치형 인방에 목재 오르내리창을 달았다. 우측 창 사이 벽면에 벽돌내쌓기를 하여 수직 분할하였다. 지붕은 4면의 박공면에서 +자형이며, 굴뚝이 나와 있었다. 내부 평면은 정방형이었다. 모문금이 건축하였을 당시에는 1층의 서측 중앙에 중앙 현관을 두고, 중복도와 연결되었다. 그리고 중복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들이 배치되었다. 2층은 +자형 평면으로 각 방을 남향으로 두었고, 중앙의 계단홀에서 좌우 맞은편에 두었다. 내부 벽면은 회반죽으로 마감되었다. 계단은 목재 널판이었고, 각 방에는 라디에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후 출입구가 남쪽으로 옮겨졌고, 각 방은 온돌로 개조되었다.
[현황]
모문금 주택은 2005년경 철거된 것으로 파악되며, 현재 3층의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1층에는 대원당인쇄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