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0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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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文化歷史體驗- |
영어공식명칭 | Daegu Cultural History Experience Alley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승희 |
[정의]
대구광역시의 역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골목.
[개설]
대구광역시는 과거와 현재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거리, 3·1만세운동길, 인쇄 골목 등 대구의 다양한 면모가 드러나는 골목들이 있다.
특히 대구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대구 역사문화체험골목을 통하여 다양한 행사와 문화공간 체험으로써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약전골목]
현대백화점 뒤에 중구 남성로에 위치한 골목이다. 임진왜란 후 1595년 경상충청전라강원 4도제찰부사인 한음 이덕형의 주청으로 대구감영이 재설치되면서 대구는 남도의 물산이 모여드는 집산지로 발돋움하였다. 서문시장을 비롯한 많은 시장들이 생겼다. 당시 경상북도 지역에 많이 나오는 한약재를 사고파는 장인 약령시가 조선 효종 때 생겼다. 약령시는 1년에 봄과 가을 2회 한 달 동안 장이 섰다. 약령시는 350년의 전통 있는 시장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시장이 1년에 한 차례로 줄어들었다.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부흥운동을 통하여 해외까지 진출하는 등 성과를 올렸고 1970년대에는 약전골목이라 부르는 상설 점포들이 들어섰다. 오늘날 한방축제를 개최하고 한의약박물관, 한약재도매시장 등을 설치하여 한약재를 알리는 전통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약령시의 기원에 관련된 정확한 문헌 기록은 없다.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이 쓴 『해동역사』를 근거로 볼 때 약령시장은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반적으로는 약령시는 조선 효종 때 시작되었다고 본다. 약령시가 열린 이유에는 여러 주장이 있다. 약령시의 명령을 뜻하는 령(令) 자에 근거하여 약재의 원할한 수급을 위하여 관찰사의 명에 따라 각 지역에 약령시가 열렸다는 주장이 있다. 약재 거래를 위한 시장이라면 우시장이나 어시장처럼 약재시장이 되었어야 옳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조정에서 필요한 약재는 이미 특산물로 조달되었기에 약재시장을 설치할 이유가 없다. 또 사농공상의 차별이 심하던 시대에 시장을 열고 장사를 하는 것을 나라가 장려할 리 없다는 것이다. 약령시의 기원에 대한 다른 주장은 일본이나 중국과의 교역에 필요한 약재를 수집하기 위하여 개설되었다는 것이나, 인삼 외에는 별로 교역하지 않았기에 근거가 약하다. 건강을 지키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재를 거래하려는 목적으로 개설되었을 것이다.
경상감영의 설치와 더불어 경상도의 특산물이던 약재가 대구로 모였다. 약령시의 자리가 서문시장과 가까운 것은 필요에 의한 것이다. 1년에 2회 한 달 동안 장이 설 때, 서문시장 근처의 숙박시설이나 주막 등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동 인구의 유입도 손님을 모으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대동법 실시도 약령시 성장에 큰 역할을 하였다. 공물을 특산물이 아닌 쌀로 내게 되었으니, 경상도의 특산물인 약재를 팔아야 할 필요성이 생겼던 것이다. 오랜 전통과 규모를 자랑하던 약령시도 일제의 간섭과 억압으로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일제가 한국 시장을 장악하기 위하여 공영제를 실시하였고 모든 상업 활동은 허가가 있어야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제의 억압에 맞서 양익순의 주도로 1923년 약령시진흥동맹회를 결성하고 공정거래, 운임 특혜, 여관 제공 등으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공식 거래액이 10배 이상 늘어났으나, 독립운동의 자금과 연락을 지원하는 거점으로 지목되어 1941년 약령시는 폐지되었다.
해방 이후 활기를 되찾는가 싶더니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상설시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남성로와 동성로, 계산동1가, 계산동2가, 종로2가, 장관동, 상서동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에 가게들이 많이 들어서게 되었고, 80%는 약재와 관련된 상점이었다. 1978년 사단법인 약령시보존위원회를 발족시키고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 개최와 약재도매시장, 약령시한의학박물관 건립을 추진하였다.
[청라언덕과 청라언덕길]
청라언덕은 대구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언덕이자 관광 명소이다. 20세기 초 챔니스, 스윗즈, 블레어 같은 개신교 선교사들의 집이 푸른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어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를 써 ‘푸른 담쟁이덩굴’이란 뜻의 청라언덕이라 불리게 되었다. 대구 지역 개신교 교회가 설립된 것은 베어드 선교사의 공이 크다. 1893년 베어드는 남성정에 교회 부지를 마련하였고 아담스 선교사가 1897년 부임하였다. 1898년 남성로에서 서자명, 정완식 등과 함께 교세를 확장하였다. 1898년 기와집 4동을 구입하여 교회당으로 사용함으로써 경북지방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 남성정교회가 창립된 곳이다. 이후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1907년 단층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1933년 9월 벽돌조 교회당을 건축하고 제일교회로 개명하였다. 대구 제일교회는 1992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구제일교회는 의료선교사업과 교육선교사업을 벌여 지역사회에 기여하였다. 대구경북 최초의 서양의료기관이 제중원이 설립되고 1899년 동산동으로 옮기면서 동산병원으로 개칭하였다.
선교사 스윗즈가 살던 선교사스윗즈주택은 선교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이다. 선교사 챔니스가 살던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선교사챔니스주택은 현재 의료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 소장품으로 청진기, 최초의 피아노 등이 있다. 선교사 블레어가 살던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선교사블레어주택은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청라언덕을 오르는 90계단은 대구 3·1만세운동길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질 적에”로 시작하는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동무생각」의 배경이 된 곳이라 동무생각 노래비가 있다. 또한 선교사들의 묘역인 은혜정원이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 골목투어 중 제2코스인 근대문화골목 투어에서 첫 번째 구간이다.
청라언덕길은 1919년 3월 8일 계성고, 신명여고[현 신명고등학교], 대구고 학생들이 3·1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일본 순사를 피하려고 소나무가 우거진 청라언덕길을 따라 숨어 가 서문시장에 이르렀던 역사적인 길이다.
현재 90계단 벽면에는 1900년대 당시 사진들과 3·1운동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3·1만세운동길]
3·1만세운동길은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을 하기 위하여 집결지로 향하던 학생들이 경찰의 감시를 피하려고 이용하였던 길을 일컫는다. 시멘트 계단으로 형성되어 있다. 한국관광공사와 문화체육관광부, 각 지자체가 함께 만드는 열린관광지[장애인, 어르신, 영 유아 동반가족 등 모든 관광객이 이동의 어려움 없이 여행할 수 있는 무장애 여행지]에 2015년 ‘대구 근대골목’이 선정되었고, 3·1만세운동길은 근대골목투어의 2코스에 해당한다. 근대골목투어는 2012년 한국관광의 별,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골목투어로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3·1만세운동길은 골목투어의 청라언덕과 쌈지공원관광안내소 구간에 있으며, 계산성당이 한눈에 조망된다. 3·1만세운동길의 계단은 많은 관광객들에게 포토존으로 인기 있는 명소이며, 주변에 계산성당, 제일교회,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 등이 있어 역사 속의 대구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진골목]
진골목은 중앙대로에서 홍백원에 이르는 골목으로 종로 일대에 형성된 골목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길다’를 ‘질다’로 표현하는데, 진골목은 ‘긴골목’이라는 뜻이다. 중구 골목투어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에 해당하는 곳으로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19세기 말부터 화교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대구 최초로 가구점들이 들어선 곳이다. 2020년 11월 현재는 남성로 네거리를 중심으로 전통차, 다기, 한방, 골동품 등 전통물품 판매점 등이 있다. 진골목 양쪽으로 세련되고 독특한 인테리어의 음식점과 카페 등이 조성되어 있다. 수익금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착한골목 4호’로 지정된 나눔을 실천하는 골목이다.
[대봉동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 있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문전성시 프로젝트 계획에 의하여 설정된 곳이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주말 평균 5,000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009년 ‘방천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는 슬럼화된 공간을 밝게 꾸미기 위한 방안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를 기획하였다. 2010년 11월 20일 90m 구간을 기획하여 공개하였고, 이후 수성교~송죽미용실 350m 구간으로 확장되었으며, 2014년에 전면 재단장을 하였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며 전국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명칭은 김광석이 1993년, 1995년에 발표한 ‘다시부르기’ 앨범에 착안하여 지어졌으며, 김광석을 그리워한다는, 그린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김광석 동상 포토존을 비롯하여 최근 버스킹 등 다양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으며, 복고풍 가게, 카페 등 다양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삼덕 봉산문화길]
근대골목투어 4코스에 해당하는 길이다. 삼덕 봉산문화길은 국채보상운동공원에서 시작하여 일본식 건축 사찰인 관음사, 담장 허물기 운동으로 유명한 삼덕동거리, 예술가들이 터를 잡은 방천시장,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대구의 인사동’ 봉산문화거리, 대구천이 깎아 만들어 낸 건들바위, 유교의 향기가 숨쉬는 대구향교로 이어지는 길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예술문화 거리인 삼덕동 봉산문화거리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라서 ‘삼덕 봉산문화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대구 근대 역사가 살아 숨쉬는 장소들이 산재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청은 근대 문화재들을 새로 단장하면서 골목길로 이어지는 길을 엮어 역사교육 관광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였다. 대구학원에서 봉산육거리까지 거리에는 20여 개의 화랑이 있었다. 도로가 깨끗이 재정비되고 고풍스런 가로등과 화단 그리고 작가들의 구조조형물들로 단장되며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봉산문화회관과 청소년문화의 집이 개관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타지에서도 많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남산동 인쇄골목]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형성된 인쇄 골목이다. 계산오거리에서 남문시장 입구와 대구가톨릭대학교 유스티노캠퍼스 인근에 형성되어 있다. 인쇄골목은 1930년대 말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6·25전쟁으로 인하여 서울 피난민과 인쇄 시설이 대구로 내려오며 발전하게 되었다. 인쇄업은 도심지 산업이다. 남산동 인쇄골목은 대구 도심지에 위치하고 접근성이 뛰어난 이점으로 호황을 누리다가 최근 인터넷과 모바일 등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주문량이 줄어들면서 2020년 11월 현재 500여 개 업체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13~2016년에는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천주교구 일대와 남산동 인쇄골목 주변을 대상으로 ‘남산100년 향수길 조성 사업’이 시행되었다. 천주교 100년 역사를 담고 있는 천주교구 주변의 경관 개선과 인쇄골목 특화거리 조성을 통하여 도심재생 활성화와 도심의 관광 기반 마련, 대구광역시의 균형 있는 발전과 지역 주민의 경제 활성화 및 도시 이미지 향상이 남산100년 향수길 조성 사업의 목적이다. 남산100년 향수길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남산동 인쇄골목은 디자인 요소를 강화하여 특화거리를 조성하였고, 간판 개선 및 인쇄골목 삼각지 디자인 개선, 인쇄골목의 역사 등 홍보를 위한 전시관을 조성하였다. 남산동 인쇄골목에는 명함, 전단 기획, 복사, 제본 등 인쇄 관련 모든 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다.
[삼덕동 벽화골목]
삼덕동 벽화골목은 일제강점기 일본 상인들 집과 공무원 관사가 모여 있던 곳이며, 1998년 담장허물기운동과 함께 집 외벽에 벽화를 그리면서 조성된 골목이다. ‘삼덕동 벽화마을’이라고도 한다.
삼덕도자기공방에서 삼덕동 벽화골목이 시작되는데, 벽화들이 한데 모여 있지 않고, 행정복지센터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공방 벽면에는 타일로 붙인듯한 벽화와 개구리 벽화가 있다. 소품숖 측면에 그려진 파란 바탕의 벚꽃 벽화는 흐트러짐 없이 아름답다. 분홍빛 배롱나무 밑에 숨겨진 고양이 벽화는 하늘 바탕으로 꽃이 아로새겨진 고양이들이 나무 밑에 놀고 있다. 다른 곳에는 독특한 항아리, 물고기, 만다라, 한국전통문양, 여러 색을 밑색으로 그리고 검은색을 덮어 긁어서 표현한 스크래치 벽화 등이 있다.
벽화 외에도 공정무역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저렴하게 판매하는 삼덕길다방,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하여 희망자전거를 제작하여 보급하는 희망자전거제작소, 가출청소년이나 상담이 필요한 청소년 교육을 지원하는 YMCA 청소년평화나눔센터 등이 있다. 또한 1940년대 소학교 교장 관사로 쓰던 일본집을 개조하여 빛살미술관을 열었다가, 현재는 작은 도서관으로 변신한 삼덕마루가 있다. 바로 마주하고 있는 곳은 마을국악원 마고재이다. 현재는 어린이 극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마고재는 대구 YMCA 김경민 관장이 사비를 털어 구입하고 리모델링한 고풍스러운 건물이다. 마고재 근처에 신기한 조형물들이 많다.
[서구다문화거리]
서구다문화거리는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 북부터미널 일대를 중심으로 2008~2009년 서대구산업단지와 대구염색공단에 근무하는 외국인이 모이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서구다문화거리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2012 생활형 지역 공공디자인 공모 사업’에 대구광역시 서구가 제출한 ‘와글와글 정겨운 터미널 정주 공간 조성 사업’이 선정되면서 다문화특화거리로 조성되었다. 다문화복합쉼터 조성,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로드아트거리 조성, 다문화 상징성이 돋보이는 간판 교체 및 정비 등이 주요 사업 내용이다. 외국인들은 생활공간과 다문화가족 등 지역민과 함께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조성하였다. 2020년 11월 현재에는 외국인을 위한 휴대폰 매장과 외국음식 전문점, 외국인 마트, 외국인 노래방 등이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