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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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辰泉洞 遺跡二 |
영어공식명칭 | Daegu Jincheon-dong Yujeok2|Archaeological Site 2 in Jincheon-dong, Daeg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로 80[진천동 508]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김병섭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11월 1일~2006년 1월 16일 - 대구 진천동 유적2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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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대구 진천동 유적2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로 80[진천동 508] |
성격 | 생활 유적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남북국시대의 생활 유적.
[개설]
대구 진천동 유적2는 공동주택 신축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5년 11월 1일부터 2006년 1월 16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터 1기, 남북국시대 집터 4기, 수혈(竪穴) 21기, 도랑 1기, 우물 1기, 석조 유구 1기, 담장 석렬(石列) 1기, 바퀴흔 1조, 적심(積心) 3기, 시기 미상의 배수 시설 1기, 기둥구멍[柱穴] 32기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無文土器]와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 남북국시대 토기 59점, 기와 151점, 금속유물과 석제품, 목제품 등 7점, 합계 223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진천동 유적2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로 80[진천동 508]에 있다. 남쪽으로 진천천이 흐르고 있고, 북쪽으로는 넓게 월배 선상지가 펼쳐져 있다. 월배 선상지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데, 대구광역시 지역 최초의 구석기시대 유적인 월성동 777-2번지 유적과 신석기시대 생활 유적인 대구 대천동 유적, 유천동 유적 외에도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선돌[立石], 주거 유적이 상당수 분포하고 있다. 북쪽으로 대구 진천동 입석[국가지정문화재 사적]이 잇닿아 있다.
[형태]
대구 진천동 유적2의 청동기시대 집터는 평면 형태 직사각형을 띠며,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붉은간토기 긴목항아리[長頸壺] 조각, 민무늬토기 깊은바리[深鉢]·얕은바리[淺鉢] 조각과 꼭지모양손잡이 바리[瘤狀把手附鉢] 조각이 출토되었다.
남북국시대 집터는 사각형과 직사각형의 형태를 보이며, 2호·3호·4호 집터는 내부에 아궁이 시설을 갖추고 있다. 수혈은 직사각형, 사각형, 원형, 타원형, 부정형을 띠는데, 바닥에 화덕자리가 확인되거나 기둥구멍이 확인되는 수혈, 큰항아리[大壺]가 함께 묻힌 수혈, 단순한 형태의 수혈로 구분된다. 화덕자리나 기둥구멍이 확인되는 수혈은 부정형을 띠고 있어 주거의 기능보다는 작업장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단순한 형태의 수혈 중에는 깬돌[割石]이나 강돌[川石] 등이 채워진 수혈은 폐기장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담장 석렬과 적심은 건물터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으나 후대의 교란을 고려하면 건물터가 존재하였음을 시사한다. 남북국시대 유구에서 출토된 유물은 198점인데, 그중에서 기와가 151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평기와의 문양은 나뭇가지무늬[線條文]가 대부분이며, 생선뼈무늬[魚骨文]는 2점 확인되었다. 토기는 59점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조각으로 확인된다. 굽다리접시[高杯], 굽다리사발[臺附碗], 병(甁), 연질단지[軟質甕], 주름무늬병, 큰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진천동 유적2는 발굴 조사가 완료된 후 공동주택이 건설되면서 유적의 원형을 확인할 수 없다. 주변 진천동 일대도 개발이 진행되면서 도시화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진천동 유적2에서 청동기시대 유구는 집터 1기만 확인되었는데, 서쪽에 잇닿아 있는 진천동 고인돌 ③,④와 관련된 주거 유적의 일부로 볼 수 있다. 남북국시대의 유구는 그 성격이 불분명하며, 유구 간의 상호관계와 기능을 명확히 밝힐 수는 없으나 생활 유적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주변 지역에서 남북국시대 유적에 대한 조사가 추가로 이루어지면 종합적인 고찰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