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0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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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太極團 學生 獨立運動 記念塔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로 241[상인동 1-36]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삼조 |
건립 시기/일시 | 1973년 2월 1일 -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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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85년 -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60-10에서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으로 이전 |
이전 시기/일시 | 2003년 10월 19일 -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1-36으로 이전 |
건립 시기/일시 | 2003년 10월 19일 -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 재건립 |
현 소재지 | 태극단학생독립운동기념공원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로 241[상인동 1-36] |
원소재지 | 구 대구상업학교본관[현 대구문화재단] -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로 260[대봉동 60-10] |
성격 | 기념비 |
관련 인물 | 이상호|김상길|서상교|김정진|이준윤|이원현|윤삼룡 부관 이태원|정광해|정환진|최두환|김광연|김정하|안광선|정병준|황철임|김종우|이상학|이응락|하두명|노장열|강기인|박규인|박상포|손문호|안창용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8.1m[높이]|12.4m[가로]|7.5m[세로] |
관리자 | 대구지방보훈청|대상총동창회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학생 항일 투쟁 단체 태극단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개설]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太極團學生獨立運動記念塔)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벌인 태극단을 기념하기 위하여 1973년 2월 1일 세운 기념비이다. 원래 구대구상업학교본관에 있던 것을 1985년 달서구 상인동으로 이전하였다. 2003년 10월 19일 다시 태극단학생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이전하였다.
[건립 경위]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은 1942년 대구상업학교[현 상원고등학교] 학생 26명이 만든 태극단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위치]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1-36번지 상원고등학교 야구부 운동장 뒷편 낮은 구릉의 태극단학생독립운동기념공원에 있다.
[형태]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은 총 3개의 기념비로 되어 있다. 중앙에 있는 기념비의 정면에는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이라 새겨져 있고, 주변에 학생들이 일제에 항거하는 모습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뒷면의 상단부에는 1973년 최초로 만들어진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에 있었던 비문 내용이 새겨져 있고, 하단부에는 태극단 단원의 직책과 이름이 새겨져 있다. 왼쪽 기념비의 정면에는 세움글이 있고, 뒷면에는 1923년부터 현재까지 변화된 태극단의 심볼마크 5개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 기념비의 정면에는 바침글, 뒷면에는 태극단연대기가 새겨져 있다.
[금석문]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1975년 4월 11일 정휘창 아침해 빛나는 이 푸른 언덕에서 맥맥히 자라온 겨레의 얼이여. 반만년 깊은 뿌리 비바람에 꺾일소냐. 일찍이 서라벌에 꽃피어 화랑이었고, 여기 새로운 횃불되어 타오르니 그 이름 태극단(太極團)이다. 1942년 왜적의 모진 손톱이 겨레의 숨결마저 끊으려 할 즈음, 바로 이 배움터에서 항거의 칼을 잡고 일어선 봉오리 이상호, 서상교, 김상길, 김정진, 이준윤, 이원현, 윤심룡 등이 중심되어 뭉쳤으니, 뜻은 오직 조국의 독립에 있었고, 길은 다만 죽음을 각오할 따름이었다. 슬기로운 계획과 조직, 날카로운 이론과 방법, 배운 그 기백이 왜적의 간담을 찔렀다. 군사학·과학·체육공부에 더 힘썼으니 그 장한 힘은 겨레의 심장을 지켰다. 1843년 5월 9일 대구 앞산에서 큰 모임을 가지고 가꾸어온 지난날을 가다듬고, 싸워서 나갈 앞길을 굳게 다짐하였으니, 젊은 서슬이 삼천리를 덮었고 의로운 기개는 역사의 기둥이 되었다. 아깝다. 큰 깃발을 펴기도 전에 원수에게 탄로되어 갸륵한 새순은 무참히 잘리고 펴진 날개 원통히 찢기었지만 매운 넋은 더욱 힘차게 소리쳐 티 없이 맑은 피가 방울방울 겨레의 기쁜 숨결을 살리었다. 여기 돌을 깎아 자랑스러운 그 이름을 새긴다. 고구려의 맥박이 이곳에 뛰고 신라의 목소리가 여기서 울린다. 겨레의 아들 딸들이 고개 숙여 우러러 받들지니 태극단 그 이름 길이길이 이 땅에서 푸르리라. 태극단원 단장 이상호 관방국장 김상길 체육국장 서상교 비서장 김정진 과학국장 이준윤 단원 이원현 단원 윤삼룡 부관 이태원 단원 정광해 단원 정환진 항공부장 최두환 단원 김광연 단원 김정하 단원 안광선 단원 정병준 단원 황철임 단원 김종우 단원 이상학 단원 이응락 단원 하두명 단원 노장열 단원 강기인 단원 박규인 단원 박상포 단원 손문호 단원 안창용”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의 세움글은 다음과 같다.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1942년 대구공립상업학교의 장한 아들들이 중심이 되어 항일 독립투쟁의 횃불을 밝혔으니, 이름하여 태극단학생독립운동입니다.
오로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신명을 바친 태극단 선배님들의 드높은 기개와 숭고한 애국애국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며 그 거룩한 뜻을 자자손손 이어갈 것입니다. 중앙 및 지방정부의 협조와 4만동문들의 정성을 모아 선배님들의 나라사랑 의지를 기리고자 이곳에 태극단학생독립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기념탑을 새로이 세웁니다. 2003년 10월 19일 대구상업정보고등학교 총동창회장 황대현”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의 바침글은 다음과 같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36년 수난기, 강제징용·언어말살·창씨개명 등으로 우리민족 역사상 유례가 없는 암흑의 시대에 조국광복을 위하여 10대의 어린 학생들이 결사한 '태극단'은 대구상업학도의 기상이며 이 고장 독립정신의 정맥이었다. '태극단학생독립운동'은 일제말기의 유일한 학생독립운동으로 결사동기가 뚜렷하고 행동강령이 원대해 어떠한 학생독립운동보다 체계적이며 역사적 의의가 크므로 단순한 학생운동의 차원을 넘어서는 항일독립운동이다. 스물여섯분의 고귀한 뜻을 추앙하고 이상호 단장을 비롯하여 순국하신 네분의 명복을 기원하며 옷깃을 여민다. 2003년 10월 19일 태극단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 자문위원회 위원장 이종주”
[현황]
태극단 독립 운동 기념탑은 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회가 1973년 개교 50주년을 기념하여 대구상업고등학교 교정에 건립하였다.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가 1985년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으로 이전하면서, 태극단 독립 운동 기념탑도 함께 이건되었다. 2003년 2월 대구지방보훈청이 이달의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2003년 대구광역시 달서구에서 태극단독립운동기념공원을 조성하고,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 재건립하였다. 2019년 5월 대구지방보훈청이 이달의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대구상원고등학교와 상원고등학교 총동창회는 매년 5월 태극단학생독립운동 추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태극단 독립 운동 기념탑은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비밀학생항일운동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