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0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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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夏孝子旌閭閣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389-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민선례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81년 - 하효자정려각 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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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9년 6월 15일 - 하효자정려각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6월 29일 - 하효자정려각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하효자정려각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42길 12[만촌동 385-1] |
원소재지 | 하효자정려각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형제봉 기슭 |
성격 | 정려각|비각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관리자 | 달성하씨 봉사공파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효자 하광신의 정려각.
[개설]
하효자정려각은 고려 때 이부시랑을 지낸 하광신(夏光臣)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세운 비(碑)와 각(閣)이다. 정려비의 비문은 숙종(肅宗) 때 이조판서 겸 홍문관 대제학이던 황경원(黃景源)이 지었고, 비문의 글씨는 통훈대부 사헌부지평 이약채(李若菜)가 썼다. 하광신은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는데, 매서운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 호랑이의 도움으로 어머니가 먹고 싶어 하는 복숭아를 구해다 준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 충숙왕은 하광신의 효행을 기려 1327년 정문을 내렸고, 하광신의 효성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시대에도 계속 전해져 숙종 때 정려하고 비석을 세웠다. 1896년(고종 6)에도 하광신의 자손들에게 세금과 부역을 모두 면제시키라는 공문이 내려왔고, 공문 원본은 후손인 하재형이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위치]
하효자정려각은 수성구 만촌동 385-1에 있다.
[변천]
하효자정려각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현재의 정려각은 1781년(정조 5) 만촌동 형제봉 기슭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 왔다.
[형태]
하효자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1동 건물이며, 중앙에 정려비가 있다. 정려각은 낮은 기단위에 화강석의 원형 초석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운 건물이다. 하효자정려각의 앞면은 홍살창이며,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정려비는 연청색 화강암이며, 가로 68㎝, 세로 21㎝, 높이 150㎝ 정도의 크기이다. 비석 덮개는 원래 없고, 받침돌은 장방형 황백색 화강암이다.
[현황]
하효자정려각은 달성하씨 봉사공파 문중에서 관리하여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1989년 6월 15일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하효자정려각에 있는 비석은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효자비이며, 정려각은 조선 후기 정려각의 형식을 잘 보여 주는 건축물로 건축사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