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금호동 건물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112
한자 大邱 琴湖洞 建物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로 406[금호동 219]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0년 6월 1일~12월 17일 - 대구 금호동 건물지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원소재지 대구 금호동 건물지 -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로 406[금호동 219]지도보기
성격 건물지|생활 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금호동에서 발굴 조사된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생활 유적.

[개설]

대구 금호동 건물지는 대구-춘천 간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하여 1990년 6월 1일부터 1990년 12월 17일까지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정면 1칸, 측면 1칸의 문지와 남북으로 긴 건물의 측면 일부가 확인되었으며, 도질 토기 조각, 청자, 백자, 분청사기, 기와 등 시대를 달리하는 여러 종류의 유물이 혼재되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금호동 건물지가 있는 대구광역시 북구 금호동금호강 북안에 있다. 남쪽에는 금호강이 동쪽에서 서쪽로 흐르고, 북쪽 태복산[206m]에서 남쪽으로 길게 두 갈래의 능선이 길게 뻗어 있는데, 그 사이 곡부에 문주마을이 있다. 대구 금호동 건물지는 문주마을 앞 동쪽 산기슭에 있다. 동쪽으로 인접한 사면부에는 삼국시대의 대구 금호동 고분군 1, 2가 있고, 서쪽의 선상지성 충적지와 완만한 사면부에는 삼국시대 유물 산포지가 있다.

[형태]

대구 금호동 건물지의 문지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며, 크기는 정면 3.24m, 측면 2.4m이다. 주춧돌은 60㎝ 이상의 자연석 1매를 사용하였고, 하부에 적심석(積心石)은 확인되지 않았다. 문지 남쪽에는 동서 방향의 석열이 1.52m 규모로 남아 있는데, 남쪽으로 면을 맞추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건물지 측면부는 남북 방향의 2열의 석열이 확인되었다. 서편 석열은 50㎝~80㎝ 크기의 장대석을 이용하여 3.8m 정도 쌓여 있고, 동편 석열은 20㎝~30㎝ 크기의 작은 돌로 쌓여 있다. 주춧돌이 확인되지 않아서 건물의 본체로 보기는 어려우며, 석열 외곽에 폐기된 기와가 퇴적되어 있다.

도질 토기, 청자, 백자, 분청사기, 기와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도질 토기에는 뚜껑[蓋], 굽다리접시[高杯], 항아리[壺], 시루 조각이 확인되었고, 청자는 접시와 바닥 조각이 확인되었다. 백자는 모두 바닥 조각만 확인되었다. 기와는 평기와만 확인되었으며, 평행문(平行文)·격자문(格子文)·사격자문(斜格子文)·어골문(魚骨文)·복합문 등의 타날 문양이 확인되었다.

[현황]

대구 금호동 건물지는 부분적인 발굴 조사 후 밭으로 복구되었으나, 현재 LPG 충전소가 들어서 있다. 북쪽과 동쪽, 서쪽에 도로가 새로 조성되면서 원형을 찾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대구 금호동 건물지는 좁은 범위의 발굴 조사를 통하여 문지와 건물지 측면부 일부가 확인되는 데 그쳤다. 따라서 건물지의 명확한 성격은 알기 어려우며, 수습된 기와 유물을 통하여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건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윤용진 외, 「대구 금호동 건물지」(『대구-춘천간 고속도로 건설예정지역내 문화유적발굴조사보고서(대구~군위간)』, 경북대학교 박물관·대구교육대학교 박물관·창원대학교 박물관, 1991)
  • 문화재공간정보서비스(http://www.gis-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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