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3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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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逑 |
영어공식명칭 | Jung Gu |
이칭/별칭 | 도가(道可),한강(寒岡),문목(文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충희 |
출생 시기/일시 | 1543년 - 정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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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80년 - 정구 창녕현감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584년 - 정구 동북현감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08년 - 정구 대사헌 재임 중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 |
몰년 시기/일시 | 1620년 - 정구 사망 |
출생지 | 성주 유촌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유촌마을 |
거주|이주지 | 노곡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
거주|이주지 | 사수 -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 |
수학|강학지 | 사수 -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 |
묘소|단소 | 정구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금산리 산57-17 |
사당|배향지 | 회연서원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 |
사당|배향지 | 도동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청주(淸州) |
대표 관직|경력 | 형조참판 |
[정의]
조선 후기 대구에 이주하여 강학한 학자.
[가계]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철산군수 정윤증(鄭胤曾)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정응상(鄭應祥)이다. 아버지는 충좌위(忠佐衛) 부사맹 정사중(鄭思中)이고, 어머니는 이환(李煥)의 딸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부인은 이수(李樹)의 딸 광산이씨(光山李氏)이며, 아들은 전라도사를 지낸 정장(鄭樟)이다.
[활동 사항]
정구는 1543년(중종 38) 경상북도 성주(星州) 유촌(柳村)[현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에서 태어났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3년 향시에 합격하였고, 1564년 과거 응시를 위해 상경하였으나 시험을 치르지 않고 돌아온 후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1573년(선조 6) 김우옹(金宇顒)의 천거로 예빈시참봉이 제수되는 등 여러 번 관직에 임명되어도 나아가지 않다가 1580년에 창녕현감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584년 동복현감으로 부임하였고, 1585년 교정청낭청으로 있으면서 『소학언해(小學諺解)』·『사서언해(四書諺解)』 등의 교정에 참여하였다.
정구는 통천군수로 재직 중이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다. 1593년 선조(宣祖)의 형 하릉군(河陵君)의 시신을 찾아 장사 지낸 공으로 당상관으로 승진한 뒤 우부승지·장례원판결사·강원도관찰사·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대사헌으로 재임 중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
정구는 정치적으로 입장이 달랐던 정인홍(鄭仁弘)과 사는 곳이 가깝다고 여겨 1612년에 칠곡군 지천면 노곡(蘆谷)[현 칠곡군 왜관읍]으로 이주하였다. 1614년 노곡의 정사(精舍)에 화재가 나서 많은 저술이 불에 소실되는 재난을 당하고 대구 사수(泗水)[현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로 이주하였다. 당시 대구 지역에는 이황의 학문을 배우려는 선비들이 많았는데, 이황의 제자이고 이름난 학자인 정구가 사수동으로 이주하자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등 많은 이들이 방문하여 정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정구는 1620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정구의 저술로는 문집인 『한강집(寒岡集)』이 있고, 『가례집람보주』를 비롯한 10여 종의 예서(禮書)와 20여 종이 넘는 역사서, 의학서, 향토사서 등이 있다.
[묘소]
정구의 묘소는 성주군 성주읍 금산리 산57-17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정구는 1623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625년 문목(文穆)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성주의 회연서원(檜淵書院)과 천곡서원(川谷書院), 칠곡의 사양서원(泗陽書院), 창녕의 관산서원(冠山書院), 충주의 운곡서원(雲谷書院), 현풍의 도동서원(道東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2013년 북구 사수동 811번지에 한강근린공원(寒岡近隣公園)을 만들면서 한강선생유허비(寒岡先生遺墟碑)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