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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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蘊 |
영어공식명칭 | Jeong On |
이칭/별칭 | 휘원(輝遠),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문간(文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충희 |
출생 시기/일시 | 1569년 - 정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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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10년 - 정온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14년 - 정온 제주도 유배 |
활동 시기/일시 | 1623년 - 정온 제주도 유배에서 해배 |
활동 시기/일시 | 1626년 - 정온 경상도관찰사 부임 |
몰년 시기/일시 | 1641년 - 정온 사망 |
출생지 | 안음현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
부임|활동지 | 경상감영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 |
성격 | 문관 |
성별 | 남성 |
본관 | 초계(草溪) |
대표 관직 | 경상도관찰사|이조참판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문관.
[가계]
정온(鄭蘊)[1569~1641)의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 또는 고고자(鼓鼓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별제 정옥견(鄭玉堅)이고, 할아버지는 정숙(鄭淑)이다. 아버지는 정유명(鄭惟明)이고, 어머니는 장사랑(將仕郎) 강근우(姜謹友)의 딸이다. 형은 정위(鄭緯)이고, 동생은 정백(鄭絔)이다.
[활동 사항]
정온은 1569년(선조 2) 안흠현((安陰縣)[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정온은 1614년에 「갑인봉사(甲寅封事)」를 올려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게 한 강화부사 정항(鄭沆)을 참하고 폐모론(廢母論)을 주동한 신하들을 유배 보낼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그 상소문 때문에 제주도에서 10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고, 1623년 인조가 즉위한 이후에 유배에서 풀려났다. 1624년 1월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공주(公州)로 왕을 호종하였고, 그 후 형조참판·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626년(인조 4) 5월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부임하였고, 10월에 대사간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조참판이었던 정온은 청나라와의 화의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결사 항전을 주장하였다.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삼전도(三田渡)에서 항복한 이후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덕유산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1641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정온의 저술로는 『동계집(桐溪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정온은 숙종 때 절의가 높게 평가되어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간(文簡)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광주(廣州) 현절사(顯節祠), 제주 귤림서원(橘林書院), 함양 남계서원(灆溪書院)에 배향되었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의 거창동계종택(居昌桐溪宗宅)은 1984년 12월 24일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 제205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