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4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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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笑春 |
영어공식명칭 | Gang Sochun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석배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국악인.
[개설]
강소춘(姜笑春)[1896~1923]은 1896년에 태어났다. 협률사와 원각사, 송만갑협률사 등에서 춘향과 심청 역을 맡아 활동할 만큼 당대 최고의 판소리 명창이었다.
[활동 사항]
강소춘은 1903년(고종 40) 영친왕이 천연두를 이겨 낸 것을 축하하는 잔치에 송만갑(宋萬甲)과 함께 초대되어 공연하였다. 조선음악협회에 참여하였고, 조선축음기상회에서 1926년 11월 10일에 주최한 명창대회[조선극장] 등 다양한 공연에 출연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경성방송국 국악방송에도 8회 출연하여 자신의 장기를 불렀다. 강소춘은 「춘향가」 중 ‘사랑가’ 등 일본축음기상회의 유성기 음반도 다수 취입하였는데, 현재 7매[14면]가 확인된다.
강소춘은 성음이 아름다웠고, 고제 소리를 하였는데, 노년에도 웨장목[판소리에서 고음을 길게 내지르는 창법]의 성량은 남성을 압도할 만하였다. 장기는 「춘향가」이고, 특히 ‘사랑가’와 ‘이별가’에 뛰어났다.
강소춘은 대구에서 소리 선생을 하였으며, 만년에 경기도 안성 또는 죽산 등지에 거주하였다.
강소춘은 1923년에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일제강점기에 취입한 강소춘의 음반에는 K513 A 단가 「달거리[1] 하」[사월 초파일 날 독창 강소춘], K513 B 단가 「달거리[2]」 요만하면 넉넉하냐, K542 A 단가 「춘향 사랑가[1]」 만첩청산 늙은 범이[독창 강소춘], K542 B 단가 「춘향 사랑가[2]」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K556 A 단가 「춘향 사랑가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독창 강소춘], B 단가 「춘향 화실 사랑가 네가 먼저 벗어라」, K567 A 단가 「선인단가[1]」 강상에 둥둥 떴는 배[독창 강소춘], K567 B 단가 「선인단가[2]」 진국명산 만장봉, K576 A 단가 「춘향모 건는 방가[1]」 춘향 어머니 나온다[독창 강소춘, 장구 박화선], K576 B 단가 「춘향모 건는 방가[2]」 안고서고눕고자기, K577 A 단가 「이도령 전송가 여보시오 도령님」[독창 강소춘, 장구 박화선], K577 B 단가 「이도령 상경가」 「향단이와 춘향이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