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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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泰休 |
영어공식명칭 | Shin Taehy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최재성 |
[정의]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관료.
[개설]
신태휴(申泰休)[?~1932]는 개항기 대구에서 경상북도관찰사를 지냈으며, 이후 평안북도관찰사, 궁내부특진관 등을 지냈다.
[가계]
신태휴의 아들은 1920년대 『조선일보』 사장을 지낸 신석우이다.
[활동 사항]
신태휴는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 당시 청군을 도와 개화당과 일본군을 공격하는 데 가담하였다. 1887년 개천군수, 1898년 경무사(警務使)·농상공부협판·육군참령 등을 지냈다. 1899년 비서원승·중추원의관·육군부령(陸軍副領)을 역임하고 1904년 법부협판, 육군법원장 서리, 평리원재판장, 육군참장(陸軍參將), 원수부 회계국총장, 헌병사령관 임시서리, 육군법원장을 지냈다. 1905년 경무사를 거쳐 의정부찬정이 되었더. 1906년 경상북도관찰사와 평안북도관찰사로 지내면서 종2품이 되었다. 1907년에는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1931년 4월경 ‘경찰 전직자의 융화 호조, 경찰의 후원, 기타 적당한 사회봉사’를 목적으로 하여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만든 조선경우회[회장 이규완]가 설립되었는데, 신태휴는 김윤정과 함께 상담역이 되었다.
신태휴는 1932년 10월 8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