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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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元壽 |
영어공식명칭 | Jang Wons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출생 시기/일시 | 1905년 5월 28일 - 장원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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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7년 - 장원수 대구상업학교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11월 15일 - 장원수 항일 비밀결사 신우동맹 결성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2월 26일 - 장원수 항일 비밀결사 적우동맹 결성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4월 30일 - 장원수 항일 비밀결사 일우동맹 결성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10월 21일 - 장원수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3월 11일 - 장원수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 확정 |
몰년 시기/일시 | 1974년 3월 7일 - 장원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장원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칠성동 -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 |
학교|수학지 | 대구상업학교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적우동맹 출판부 책임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장원수(張元壽)[1905~1974]는 1905년 5월 28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상업학교 재학 중 신우동맹(新友同盟)·적우동맹(赤友同盟)·일우동맹(一友同盟) 등 항일 비밀결사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장원수는 1927년 11월 15일 사상강좌회 강사이던 장홍상(張弘相)[이명 장적우(張赤宇)]의 비밀결사 결성 제안을 수용하여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대구공립중학교·대구공립상업학교 학생들과 함께 신우동맹(新友同盟)을 결성하고 제2그룹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신우동맹은 12월 27일 조직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혁우동맹(革友同盟)으로 전환하였다. 1928년 2월 26일 혁우동맹원들은 ‘조선의 정치적 독립’, ‘모순된 사회현상 타파’, ‘만인 평등 신사회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적우동맹(赤友同盟)으로 조직을 변경하였는데, 장원수는 윤장혁(尹章赫) 등이 졸업하고 난 뒤 3월부터 재정부를 맡았다. 4월 30일에 적우동맹이 일우동맹(一友同盟)으로 조직을 변경할 때 장원수는 출판부를 맡았다. 일우동맹은 ‘맑스주의적 혁명 전술의 함양’과 ‘학생운동을 실천적으로 행한다’라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이 무렵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의 일본인 교사가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자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생들은 학생 자치, 희생자의 복교(復校), 일본인 교사 파면, 교장 실책 인정 등을 요구하며 동맹휴학 투쟁을 전개하였다. 장원수는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 투쟁으로 인하여 대구 지역 학생 비밀결사 조직이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9년 10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았고, 1930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언도받고 석방되었다. 장원수는 1974년 3월 7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장원수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