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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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岡書院 |
영어공식명칭 | Yonggang-seowon |
이칭/별칭 | 충렬사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선원로33길 101[이곡동 134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충희 |
건립 시기/일시 | 1696년 - 충렬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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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804년 - 충렬사에서 용강서원으로 개칭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용강서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8년 - 용강서원 복원 |
현 소재지 | 용강서원 - 대구광역시 달서구 선원로33길 101[이곡동 1343-1] |
원소재지 | 충렬사 - 대구광역시 달서구 장동 |
성격 | 서원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5칸[강당]|3칸[사당]|3칸[재실] |
측면 칸수 | 1.5칸[강당]|1칸[사당]1.5칸[재실] |
소유자 | 김해허씨 상무헌 낙암 양공파 종중 |
관리자 | 김해허씨 상무헌 낙암 양공파 종중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창건한 서원.
[개설]
용강서원(龍岡書院)은 1696년(숙종 22)에 상무헌(尙武軒) 허득량(許得良)[1597~1637]과 낙암(洛庵) 허복량(許復良)[1602~1637]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장동에 ‘충렬사(忠烈祀)’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허득량과 허복량은 사촌 형제 사이인데, 무술을 익혀 국가에 공을 세운 무인들이다. 허득량은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고 절충장군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허득량과 허복량은 광주(廣州) 쌍령(雙嶺)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모두 전사하였다. 국가에서는 허득량과 허복량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허득량은 병조판서에 추증하고, 허복량은 병조참판에 추증하였다.
[위치]
용강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선원로33길 101[이곡동 1343-1]에 있다. 와룡산 자락에 자리 잡은 용강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성주도씨 문중에서 관리하는 병암서원(屛岩書院)이 있다.
[변천]
충렬사가 1804년(순조 4)에 지금의 이곡동 자리로 이건하면서 용강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가 1988년에 복원하였다.
[형태]
용강서원 강당인 숭현당(崇賢堂)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이다. 사당인 충렬사(忠烈祠)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 재실인 용강재(龍岡齋)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이다.
[현황]
용강서원은 지역 주민들이 늘 지나다니는 와룡산 등산로 입구에 있다. 김해허씨 상무헌 낙암 양공파 종중에서 향사를 지내며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용강서원은 국난 극복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무신을 추앙하는 서원이다. 용강서원 주변에는 대구선원초등학교를 비롯하여 다수의 중고등학교가 있어 전통문화 체험 교육 장소로 활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