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5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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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券番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 106-19[향촌동 1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석배 |
설립 시기/일시 | 1922년 6월 10일 - 대구권번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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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42년 - 대구권번 폐지 |
최초 설립지 | 대구권번 -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 106-19[향촌동 13] |
성격 | 권번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에 있었던 일본인 권번.
[설립 목적]
대구권번(大邱券番)은 일본인들이 권번의 경영 및 포주에게 자금의 대부 등과 관련된 일체의 업무를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변천]
대구권번은 1922년 6월 10일 대구부 촌상정(村上町) 13번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 13번지 대구문학관 뒤편에 일본인들이 설립하였다. 대구권번은 1941년 12월 8일 일제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되면서 1942년에 폐지되었다. 대구권번은 일본인들만을 대상으로 영업하였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 발전과는 무관하였다.
[구성]
대구권번의 설립 당시 자본금은 3만 원이었고 사장 및 대표는 속반원삼평(粟飯原三平), 이사는 군목다삼랑(桾木多三郞)·천정송길(淺井松吉), 감사는 산전영길(山田榮吉)·죽중정부(竹中定夫)였다. 1925년 당시 주식은 1,000주, 주주는 23명이었는데 대주주는 속반원삼평[88주], 죽중정부[83주], 승환상길(勝丸常吉)[71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