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231
한자 大邱 上人洞 遺蹟三
이칭/별칭 대구 상인동 128-8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77-12|상인동 102-25|상인동 118-2
시대 선사/청동기,선사/철기,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2월 18일~7월 31일 - 대구 상인동 유적3 삼한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현 소재지 대구 상인동 유적3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77-12|102-25|118-2지도보기
성격 무덤
양식 돌방무덤|널무덤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철기시대 및 삼국시대 무덤 유적.

[개설]

대구 상인동 유적3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철기시대 및 삼국시대 무덤 유적이다. 도시계획도로 조성과 관련하여 2008년 2월 18일부터 2008월 7월 31일까지 삼한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 16기, 고인돌 12기, 수혈 유구 4기, 야외 화덕자리 3기, 철기시대 널무덤 1기, 삼국시대 돌방무덤 1기, 조선시대 배수로, 도랑 유구, 도로, 부석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유구에서 민무늬토기[無文土器] 바리[鉢], 항아리[壺], 다양한 형태의 간석기[磨製石器], 굽은옥[曲玉], 철기시대 널무덤에서 민무늬토기, 삼국시대 돌방무덤에서는 청동허리띠꾸미개[靑銅鉸具]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상인동 유적3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77-12번지, 102-25번지, 118-2번지 일대에 있다. 진천천 하류부 북안에 넓게 펼쳐져 있는 월배 선상지의 선단부에 해당되며, 사방으로 선단부 충적평야가 이어진다. 월배 선상지에서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과 생활 유적을 비롯한 많은 선사시대 유적이 확인되었는데, 유적 주변으로도 상인동 123-1유적, 상인동 87유적, 월성동 고인돌Ⅱ, 상인동 고인돌Ⅳ가 있다.

[형태]

청동기시대 집자리 중 세장방형, 장방형, 방형 집자리에는 1~3개의 화덕자리가 설치되어 있다. 1호, 12호, 15호 집자리에서는 내부에 폐기 시 의례 행위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집석이 확인되었다. 원형 집자리 중에는 4호와 같이 중앙에 수혈과 양쪽에 기둥자리가 있는 송국리식집자리[松菊里式住居址]도 확인된다. 고인돌은 상석과 매장 시설이 함께 확인되는 것이 2기, 매장 시설만 확인된 것이 7기, 이동된 상석이 3기이다. 매장 시설만 확인된 것은 고인돌 상석이 있었던 것인지 딸린무덤[陪葬墓]인지 분명하지 않다. 매장 시설은 납작한 돌[板石]을 이용하여 상자모양돌널[箱形石棺]을 만든 것과 납작한 돌과 강돌[川石],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석축형돌널[石築形石棺]의 형태로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는 전기의 특징적인 유물은 겹입술짧은빗금무늬[二重口緣短斜線文], 겹입술짧은빗금골아가리[二重口緣短斜文口脣刻目], 겹입술짧은빗금구멍무늬[二重口緣短斜線孔列文], 골아가리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 골아가리[口脣刻目]가 새겨진 토기와 가락바퀴[紡錘車], 돌검[石劍], 돌화살촉[石鏃],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돌도끼[石斧], 돌끌[石鑿], 숫돌[砥石], 갈판[碾石] 등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고인돌에서는 붉은간토기항아리[赤色磨硏土器壺], 돌칼, 돌화살촉, 천하석제굽은옥[天河石製曲玉]이 출토되었다. 철기시대 널무덤은 상부에 돌무지[積石]가 있었으며, 민무늬토기항아리가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돌방무덤은 앞트기식[橫口式]으로 추정되며, 40㎝ 내외의 깬돌을 가로 눕혀쌓기, 세로 눕혀쌓기로 벽석을 축조하였고, 북쪽 장벽에 시신을 안치하는 시상대(屍床臺)를 마련하였다. 시상대에서 청동제 허리띠꾸미개가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상인동 유적3은 발굴 조사 후 도시계획도로가 조성되었고, 주변 선단부 일대도 학교, 아파트 등이 조성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대구 상인동 유적3에서는 청동기시대 월배 선상지에서 확인되는 청동기시대 전기와 중기의 모든 집자리 형태가 확인되었고, 집자리와 무덤이 함께 조성되어 있어 당시 마을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월배 선상지 선단부에 있었던 대단위 청동기시대 취락 연구에 기초가 되는 자료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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