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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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瀾 |
영어공식명칭 | Yu Ran |
이칭/별칭 | 경관(景觀),유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동권 |
출생 시기/일시 | 1735년 - 유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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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59년 - 유란 사망 |
출생지 | 유란 출생지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
거주|이주지 | 유란 거주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
수학|강학지 | 유란 수학지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
수학|강학지 | 유란 수학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
묘소|단소 | 유란 묘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월애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성 |
본관 | 풍산 |
[정의]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문인 학자.
[가계]
유란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관(景觀)이다.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6대손이며, 졸재(拙齋) 유원지(柳元之)의 현손[증손자의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유후항(柳後沆), 아버지는 유성복(柳聖復), 어머니는 월성최씨(月城崔氏)로, 최정석(崔鼎錫)의 딸이자, 백불암(百弗菴) 최흥원(崔興遠)의 여동생이다. 부인은 재령이씨(載寧李氏)로 이치원(李致遠)의 딸이며, 아들은 유유춘(柳有春)이다.
[활동 사항]
유란은 1735년(영조 11)에 외가인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칠계(漆溪)에서 태어났다. 유란은 항상 어머니를 따라 칠계 외가에서 머물렀다. 겨우 글자를 알 나이에 외숙 백불암 최흥원에게 글을 배웠다. 어른들은 유란이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것을 염려하여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놀게 했는데, 오히려 유란은 소나무 아래에서 도연명의 시만 외웠다고 전해진다. 어른들은 이런 유란을 기특하게 여겼다. 최흥원이 효로써 부모를 섬기는 것을 본받아 매일 새벽에 일어나 어머니를 문안하였다.
15세에 비로소 칠계에서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로 돌아온 뒤에 임여재(臨汝齋) 유규와 함께 공부하였다. 밤마다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애일잠(愛日箴)」, 「야기잠(夜氣箴)」 등을 외웠다. 유규와 함께 선배들의 문집을 읽었는데, 대나무에 칼을 대는 대로 쪼개지듯 훤히 이해하였다. 17세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 나아가 『논어』를 배웠는데, 첫 장을 읽자마자 병 때문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항상 『논어』를 읽고 초록하는 등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22세에 어머니가 역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몹시 슬퍼하여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였다. 결국 몸이 쇠약해져 삼년상을 마치고, 25세 되던 1759년(영조 35)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
유란의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월애동(月厓洞)에 있다.